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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은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포기할 것인가

등록일 2012-05-14 21:34 게재일 2012-05-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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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통합 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의 경선 문제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선거 초반의 이정희 대표의 지역구 후보 경선과정의 부정은 본인의 사퇴로 가까스로 수습됐다. 그러나 이번 비례 대표 경선 과정의 부정은 현재로서는 대단히 수습되기 어려운 국면이 돼 버렸다.

흔히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보수가 전통을 중시하고 체제 유지에 초점을 두다 보니 현실영합에 따른 부패로 갈 가능성이 높고, 진보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입장이지만 세력 간의 선명성 논쟁으로 분열로 치닫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통합 진보당의 내부 갈등은 경선 절차상의 부정부패와 계파 분열이라는 모순된 현상이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 당권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치졸한 변명과 독선, 이를 시정하겠다는 비 당권파의 폭로와 대립은 양식 있는 시민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경선 과정상의 부정과 비리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진보 정당의 도덕성과 진정성까지 의심을 받게 됐다.

사실 우리나라의 진보 정당의 의회진출은 분단의 모순과 레드 콤플렉스의 풍토위에서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난관을 뚫고 오늘의 통합 진보당이 19대 총선에서 10%이상의 지지를 얻어 13석의 의석을 확보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진보정당의 주역들은 87년 민중 항쟁을 전후해 이 나라의 수구 보수 세력에 저항해 사회 민주화에 일정 부문 기여했음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진보 개혁적인 인사들이 체포 구금되고 통제와 감시로 인해 희생과 고통이 따랐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통합진보당의 경선 과정의 부정에 따른 내부 갈등과 그 대응 방식은 실망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다. 과거의 그들의 업적과 공로마저도 희석시키고, 나아가 자신들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 통합 진보당의 비례 대표 선출과정은 묵인할 수 없는 부정으로 판명됐다. 당에서 전면 위임한 진상조사 위원장도 이번 비례 대표 선정 과정은 묵과할 수 없는 부정 선거가 자행됐음을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데도 당 지도부의 이전투구 양상은 개혁과 선명성을 담보로 하는 진보정당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진보 정당 당권파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방기한 독선적 태도는 급기야 그들의 토대인 민주노총과 진보적 시민 단체들로부터도 불신을 받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은 진보 정당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여론조사에서도 10% 대의 정당 지지율이 5%대로 추락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의미한 것과 같이 진보정당이 부패나 비리, 관행과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할 때 그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항간에는 진보세력의 부패는 보수 못지않다는 비판이 따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나라 진보 정당이 그동안 열악한 노동자와 빈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자기희생적인 도덕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지도부의 아집과 독선을 보면서 언뜻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이 머리를 스쳐 간다. 그는 `현대의 개인은 도덕적으로 선량하지만 조직의 일원이 되면 선량하지 못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를 원용하면 한국의 진보의 엘리트들이 기층 민중들의 아픔을 같이해 개인적으로는 도덕성이 선량하지만, 정당 조직의 일원이 됐을 때는 배타적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의 틀에 갇혀 개인의 도덕성까지 마비됐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진보정당은 이번의 내홍과 갈등을 계기로 자신들의 잘못된 신조와 조직문화를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경선과정의 부정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부정이 아니라 부실`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진보당의 일부 지도부가 자신들의 정치 노선은 항상 진리며 이 노선을 비판하는 세력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독단과 독선에 불과하다. 자기스스로를 정치적 진리의 주체로 확신하고 우월감과 소명의식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적으로 여기거나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교조주의이다. 이번 경선 과정의 의혹제기와 진상 조사 결과를 분파주의나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더욱 시민 사회의 불신을 자초한다. 진보 통합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절차적 민주주의에 더욱 충실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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