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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의 큰 울림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2-05-03 21:40 게재일 2012-05-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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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사에 실린 글이다. 충북 청주시 어느 아파트의 엘리베이트 안에 삐뚤삐뚤한 글씨와 크레용으로 그린 쪽지가 붙어 있었다. 새로 이사온 일곱살 먹은 아이는 온 정성을 다해 이웃 어른들에게 “저 12층에 이사 왔어요”하고 인사를 하면서 이웃 어른들에게 자기 가족을 소개했다. 비록 철자법은 틀린 곳이 있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까지 담았다. 어린 아이의 마음은 이웃을 움직였다. 406호 아줌마와 605호 아저씨도 손으로 답장 메모를 써 빼곡히 붙이기 시작했다. “준희야, 이사와 반가워”“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통로에 큰 선물을 주셨구나….”이런 따듯한 모습을 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물가 불안에다 빈부격차, 정치 대립으로 언제나 뿔난 얼굴인 어른들보다 일곱살 준희가 백번 낫다고 한다.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드워즈가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준희의 쪽지에서 그 뜻을 완전히 알 것 같다. 돌아보면 우리의 살림은 고도성장으로 발전되었지만 우리의 삶은 삭막해 지고 있다. 단칸방에서 현대식 아파트로 옮기면서 이웃 사촌이란 말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준희의 쪽지는 그래서 더 정겹고 각별한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회에서 삭막한 아파트를 벗어나려는 흐름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은 전국 주택의 절반이 아파트이다. 더 이상 벗어날 곳도 없을 만큼 국토는 좁다. 이제는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아파트, 따뜻한 이웃사촌을 만드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일곱살난 준희의 쪽지에서 그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누가 거저 가져다 주겠는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첫 단추는 오랜 전통으로 여기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되살리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곱 살 아이가 가르쳐 준 대로 오늘부터 아파트 이웃 주민과 반갑게 인사하면 어떨까. 아이의 작은 쪽지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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