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예측키 어려웠던 총선이 새누리당의 반판 승리로 끝났다. 선거 기간 중 여야는 상호 비방과 폭로, 흑색선전 등 혼탁한 선거로 일관했다. 양식 있는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이번 선거는 또다시 투표율의 저하로 표출됐다. `정치적 동업자`인 후보들이 선거판에서는 `철저한 적대자`가 돼 이전투구 양상을 보여 그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선거 사범에 대한 고소 고발 사건이 무려 1천79건이나 됐음은 이를 잘 반증한다. 재판 결과에 따라 보결선거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이번 총선은 정책이나 인물 대결보다는 폭로와 혼탁으로 얼룩져 이 나라 정치 발전에 역행했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사실 선거 당일 까지 `정치 사찰`과 `막말 파문`이 선거판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유권자들의 표심과 양식이 과열이나 혼탁을 제압하고 어느 일방의 승리가 아닌 152대 148의 균형추를 이뤄 줬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난 총선 결과를 찬찬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지럽고 시끄러워 공약마저 사라진 이상한 선거였지만 그 결과는 아래와 같이 얻은 것도 상당히 많다.
먼저 정당 후보공천에서 탈락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는 겨우 3명만이 당선됐다는 점은 상당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이는 이제 선거의 승리가 정당 공천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 그것이 정당 정치의 토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급조된 정당까지 합쳐 20개의 정당이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정당 지지율 2%를 얻지 못한 정당은 해체될 운명에 처해 있다. 현행 정당 법제하에서 4개의 정당만이 생존하고 신생 철새 정당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은 요란한 선동 선전보다는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신뢰성을 저울질하며 투표한 점이다. 이번 총선은 12월 대선과 연계돼 처음부터 여야 공히 비방과 폭로로 과열됐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이에 다소 흔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정당에 대한 신뢰, 후보의 공약 이행의 가능성을 보고 투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보수도 진보도 아닌 양식 있는 중도 부동표가 막판 선거 결과를 좌우한 점은 이 나라 정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번 총선과정에서는 서구 선진 정치에서 볼 수 있는 정당간의 선거연합의 가능성을 잘 보여 줬다. 민주 통합당과 통합 진보당의 선거 연합의 결과는 140석의 의석 확보로 검증됐다. 더구나 정착이 힘든 좌파 통합 진보정당이 13석을 확보해 제3당의 지위에 오른 것도 선거 연합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보수 우파인 자유 선진당도 새누리당과 선거 연합을 했더라면 그토록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야당의 선거 연합이 정책 연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선거의 새로운 순기능적 모델이 됐음은 특기할 일이다.
넷째, 이번 총선 결과가 한국 정치의 또 다른 고질병인 지역 정당 구도를 해체 가능성을 보여 줬다. 우리가 관심을 끄는 호남 민주당, 영남 새누리 정당이라는 누적된 구도하에서 여야는 상호 적진에서 상당한 지지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25년 만에 처음으로 부산 경남 지역에서 민주 통합당이 여러 명의 당선자를 배출하고 정당 지지율 35%를 획득했음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대구 경북에서도 민주 통합당 김부겸 후보가 40%이상의 지지를 획득하고, 새누리당 불모지 광주에서 이정현 후보가 비슷한 득표를 하였음은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지역 패권 구도에 대한 태풍은 되지 못하였지만 조용한 역풍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다섯째, 이번 총선에서 북풍이라는 외부 변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 점이다. 이 나라 선거에서 여러 차례의 대선과 총선에서 북한 변수는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북한 당국의 대남 선전 포고, 미사일 발사 등의 악재는 선거에 미친 영향은 감지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 정치가 이제 안보나 북풍이라는 변수가 선거에 크게 작동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총선 결과는 이 나라의 민주 정치 발전이 결국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의 성숙한 손에 달려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