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 결과 전국구 비례대표 54명의 당선자가 발표됐다. 지역구 당선자에 가려 전국구 의원들에 대한 관심이 희석됐지만, 특별히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두 명의 비례대표 당선자이다. 멀리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자스민(35) 의원과 김일성대학 교수신분으로써 탈북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된 조명철(53)이다. 이들의 의원 당선은 헌정사에 처음 있는 일이며, 글로벌 시대 우리 사회의 급변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자스민은 필리핀 대학에 재학 중 한국인 선원과 결혼해 1998년에 한국에 귀화한 사람이다. 그는 이곳에서 사고로 남편까지 잃고 시부모, 시동생 가족 등 9명을 이끌고 살아가는 억척 주부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다. 이주 여성을 위한 봉사 단체를 만들어 사무총장, 서울시 외국인 공무원 1호로 이주민 지원 업무를 담당하던 그는 다문화 가정 문제를 다룬 영화 `완득이`에도 출연할 정도로 미모도 갖췄다. 한편 조 명철은 북한의 외교관 자제로서 김일성대학 졸업 후 교수 생활을 하다 1993년 탈북해 한국의 고위 공무원인 통일교육원 원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황장엽 비서에 이은 고위급 지식인으로서 북한의 경력을 토대로 오랫동안 해외 경제 연구원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여름 나는 통일 관련 행사 관계로 그와 장시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대화는 솔직 담백했으며 유머 감각이 뛰어나 친화력까지 돋보였다.
우선 지면을 통해서나마 두 분의 의원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새누리당이 선거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다수당이 된 배경에는 이주민 등 파격적인 공천도 한몫했을 것이다. 집권 여당에서 일반을 상식을 뒤엎고 당선권이 보장된 앞자리에 그들을 공천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참신한 느낌마저 줬을 것이다. 물론 인터넷상에는 잠시나마 이자스민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과 비난 등 악의적인 글들도 있었다. 또한 조명철에 대한 학력 문제도 일시 제기됐지만 본인이 소명함으로서 충분이 해소됐다. 전반적인 여론 동향은 이들의 의회 진출을 환영하고, 미래를 향한 신선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의회진출은 단순한 이주민 개인의 성공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그 정치 사회적 함의도 상당히 크다. 한국사회는 이미 이주민 140만명, 남한 인구의 2.8%로 인구 통계학적으로 다문화 사회에 들어서 있다. 현재 이자스민과 같이 국제결혼 이주민이 21만여명, 그들의 자녀가 15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결코 적지 않는 숫자다. 이자스민 의원이 이제 이들 이민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은 정당하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조명철 의원 역시 북한에서 공부한 최고 엘리트로서 통일과 대북 문제 전문가로서의 의정 활동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에는 2012년 현재 탈북자 2만3천여명이 대부분 정착과정의 진통을 겪고 있다. 그의 의회 진출은 탈북자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며, 북한의 김정은 족벌 체제에는 경종을 울려 줄 만 하다. 3대 세습이 이어지는 북한의 특권 정치 현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휴전선 이남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대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이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북 공히 단일 민족, 백의민족, 배달겨레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 결과 우리의 사회에는 아직도 외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 있다. 이자스민에 대한 비난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인을 혐오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지극히 후진적인 사고이며, 일종의 편견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탈북자에 대한 사시안적 태도도 하루 빨리 제거해야 한다. 대구·경북에도 천여명이 넘는 탈북 이주민들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동토의 땅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찾아온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이들의 정착을 돕는 것이 통일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국민 소득 2만불 시대,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는 사고와 의식부터 다문화 시대의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두 분의 의회 진출을 계기로 우리사회가 하루 빨리 다문화적 가치를 수용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들 두 분의 당선을 축하하며 그들의 의정 활동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