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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헌신의 삶으로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2-03-26 21:46 게재일 2012-03-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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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최초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시력 장애를 뛰어 넘어 장애인 대변자로 살다 지난 2월에 세상을 떠났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큰별인 그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간 훌륭한 사람이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우한 과거 를 가진 사람이었다.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살 때 중학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그 충격으로 넘어진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유일하게 의지했던 누나조차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0대에 세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서글픈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62년 서울맹아학교 학생 시절 자원봉사를 나온 여대 1학년이던 한 여인의 도움으로 대학교에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1972년 장애인 최초로 국비 유학을 떠나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불굴의 입지적 존재였다. 특히 2011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 장애인 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된 인사였다. `눈 먼 새의 노래`로 불리우는 그는 마지막도 아름다웠다. 지난해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4개월여 동안 투병해 왔다. 그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좀더 많은 것을 나누고 좀더 많은 것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며 “하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했고 자원봉사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과 두 아들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컸기에 행복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창설하여 운영해 왔으며 지난 1월에는 자신이 40년 전에 장학금을 받았던 국제로타리 재단에 평화장학금으로 25만 달러를 기부해 생의 마지막까지 봉사하는 삶을 보여줬다. 갖은 장애와 고난을 이기고 68세를 살다간 그의 숭고한 삶에 우리 모두는 그가 우리의 우상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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