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국내 굴지의 주류회사가 `소맥(소주+맥주) 폭탄주` 제조 전문가를 구한다는 기사가 보도돼 잠시나마 주당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자칭 `소폭` 제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필자도 재미삼아 한번 지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다. 신청자가 너무 많을 것 같아서다. 이 회사가 내건 조건들이 단순히 흥밋거리일수도 있지만 그 속의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문구들이 있다. 우선 선발되면 `소폭` 제조전문가의 자격증을 준다. 그렇다고 월급이나 수당 등 그에 따른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술자리 분위기를 돋우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역할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자꾸 이 자격증이 따고 싶어질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자랑하는 제조자 100명만 엄선해서 뽑는다고 하니 더 솔깃해진다. 만약 자격증을 따게 된다면 그에 따른 유명세를 누리는 것은 물론이요, 술자리의 엔터테인먼트로 군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주당들에게 소맥 폭탄주가 유행하게 된 시점은 아마 1990년 전후쯤으로 추정된다. 서민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에 맥주를 알맞은 비율로 섞어 마시는 그 맛은 술꾼이 아니면 모른다. 소주만 마시면 어딘가 2%정도 부족한 것 같고, 그렇다고 맥주만 마시자니 싱겁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폭탄주다. 이제 폭탄주는 서민층에서부터 최상류층까지 즐기는 `국민주`로 자리매김했다. 초창기에는 양폭(양주+맥주)이 고급 술집 등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요즘엔 소폭이 오히려 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폭의 제조법은 시대가 흐르면서 자꾸 변하고 있다. 폭탄주 제조법 또한 수십여가지나 된다. 충성주, 회오리주, 황제주, 골프주, 타이타닉주, 용가리주, 삼색주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초창기에는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따른 뒤 그 위에 소주를 채운 잔을 퐁당 담그는 `핵`폭탄주가 대세를 이뤘다. 이 폭탄주를 몇 잔만 마시면 그 아무리 센 주당들도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이 보다는 약한 7부(소주2/3+맥주2/3 비율)폭탄주가 유행하기도 했다. 최근엔 소맥의 비율을 컵의 1/3이하로 낮춘 신형 폭탄주가 유행하고 있다. 마시기도 부담 없고 뒷맛도 그럴싸하다.
최근 서울에 사는 친구가 내려와 포항북부해수욕장내 모 술집에서 한잔했다. 포항식(소주1/3+맥주1/3 비율)으로 깔끔하게 말아 한잔을 권했다. 친구는 묘한 반응을 보이며 마시기 좋다고 했다. 포항식은 소주 일정량을 맥주 컵에 먼저 따른 뒤 그 위에 맥주를 붓는 방식이다. 그러나 서울식은 그 반대였다. 제조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전해오는 뒷맛은 똑 같았다. 만약 폭탄주가 없었다면 주당들은 지금쯤 무슨 술을 마셨을까. 소주와 맥주가 뒤섞여 독특한 맛을 내는 폭탄주. 한꺼번에 두 가지의 술을 동시에 맛볼 수 있고, 취기도 빨라서 좋다.
폭탄주를 누가 고안해 냈는지, 정말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한국 술 문화에서 막걸리와 더불어 폭탄주만큼 대중화된 술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류회사가 소주와 맥주를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 폭탄주를 시판한다고 해서 잘 팔릴까. 아마 술꾼들은 주류회사가 만든 틀에 박힌 `황금비율`보다는 자신이나 동료가 직접 만들어 주는 들쭉날쭉한 비율의 폭탄주를 더 선호할 것 같다.
폭탄주를 마시면 또 한가지 공평한 것이 있다. 소주나 맥주 어느 회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양측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점이다. 한잔 술에 일거양득을 얻는 셈이다. 술꾼과 주류회사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니까 이 또한 얼마나 경제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