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은 20대의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오열하는 늙은 당료들을 앞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내외의 조문을 받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뒤 덮인 평양 금수산 의사당 앞 장례식장, 운구 행렬을 선도해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육중한 몸매, 검정색 양복과 머리 모양은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을 빼어 닮은 듯 했다. 물론 운구차 바로 옆에는 그뿐 아니라 고모부 장 성택과 군부의 핵심 실세 서너 명이 동행했다.
지난해 7월께 폴란드에서 북한 전문가 보베르씨가 지인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두 달 간 평양에 체류하다가 한국에 온 것이다. 그는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내에서 동승한 김정은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는 식사자리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름대로 북한의 독특한 `수령 승계론`과 `백두 혈통론`을 들어 설명했지만 그의 푸른 눈은 더욱 커질 뿐이었다.
사실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과정은 그의 아버지에 비하면 초단축 과정을 거쳤다. 1942년 생 김정일은 김일성 대학 졸업 후 조선 노동당에 입당하고, 1974년 이미 `당 중앙`으로 호칭되기 시작했다. 김일성 사망 1년 전인 1993년 그는 국방위원장에 등극했다. 이것도 부족해 김일성 사후 3년 동안 `유훈 통치` 기간을 거쳐 1997년 노동당의 총비서로 추대됨으로 권력 승계 절차는 마무리 됐다.
이에 비하면 김정은의 권력 세습은 너무나 갑자기 이뤄졌다. `청년 대장` 김정은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김정일의 셋째 아들, 스위스 유학 2년, 중앙 군사학교 출신, 당 중앙 군사 위원회 부위원장 정도일 뿐이다. 김정일 사망 후 북한 언론은 갑자기 그를 `당중앙위원회 수반`, `혁명무력의 영도자`, `선군의 영장`으로 높이 떠받들고 있다. 할아버지뻘인 노령화된 당과 군의 간부들이 그에게 앞 다투어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김정은의 북한 권력 승계에는 몇 가지 불가피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군과 당의 간부들은 권력세습만이 그들의 기득권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칫 권력 이양과정의 혼란은 엄청난 숙청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있다. 결국 그들은 김정일이 구축한 당·군·인민의 `수령 결사 옹위론`과 `혁명 승계론`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북한의 경제적, 외교적 고립과 위기가 역설적으로 그의 권력 승계의 안전핀으로 작용하고 있다. 후견인 격인 중국까지 권력 승계를 지지하고, 미국마저 그들의 대선을 의식해 그것을 묵인하고 있다. 심지어 남한에서도 북한의 권력 안정이 우리 경제적 혼란을 방지한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의까지 표명하였다. 이처럼 역사에는 이상한 논리가 현실을 지배할 때가 더러 있는것 같다.
그의 권력세습은 이제 안전하다고 볼 것인가? 선군 핵심과 고모부 장성택의 그의 대리 권력이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대로 굴러 갈수 밖에 없다. 함경도 지역에서 권력 승계 비난 삐라가 살포됐다 하나 확인하기 어렵다. 결국 그의 권력은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 정치`와 `강성 대국 건설`이라는 통치 방침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며칠 전 북한 언론은 김정은의 조문시 침통한 표정과는 달리 군 간부 들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자신감을 과시한 듯하다. 젊은 지도자의 새로운 리더십은 현재로서는 찾아 볼 수 없고 후견인 정치의 본질상 더욱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남한 당국에 대해서는 조문 불허를 들어 `철천지 원수`, `상봉 불가`를 연일 외치고 있다. 그들의 상투적인 언행이지만 정권 초기의 자기 보위적 성격이 강한 듯하다. 로드 액톤경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 한다`는 철칙이 현재로서는 북한 땅에서 예외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