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엔 음양의 조화가 존재한다. 강렬한 햇빛이 있는가 하면 은은한 달빛도 있고 가냘프지만 정감을 주는 별빛도 있다. 그래서 양은 밝은 낮을 낳게 하고 음은 어두운 밤을 탄생케 한다. 태양빛이 만물에 끼치는 고마움이 너무 크게 그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지만 달빛은 언제나 그리움의 상징으로 인간의 가슴에 추억과 선망의 대상으로 남는다. 누가 달빛을 만들었는가? 밤은 잠을 자기 위해서, 의식을 잊기 위해서, 휴식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의 망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 밤을 낮보다도 매력있게 했으며 여명보다도 저녁 노을보다도 한층 그리운 것으로 존재케 됨은 달빛 탓이라고 모파상은 말했다. 달빛을 찬양한 이백의 시에 “섬돌 위에 찬 이슬 내려/어느덧 버선도 촉촉히 젖었다/밤이 깊었음인가/들어와 문발을 내리우면/시름인 양 따라와서 비치는 교교한 달빛”이라 했다. 심훈의 소설에도 농촌의 달은 유난히도 밝다. 티끌 하나 없는 대지 위에 달빛은 쏟아져 내려 초가집 지붕을 어루만진다. 아득히 내다 보이는 바다는 팔팔 뛰는 생선의 비늘같이 번득인다.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지금 긴 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울음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빛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지경이다.”이 대목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에서도 “서리 찬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훤한 얼굴로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깊은 가을 소슬한 바람이 쉬지 않고 예어부니 옥수수 떨어지는 낙엽은 달빛 가득 찬 뒷 뜰을 적시고 있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