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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비행 학생만의 문제인가

배한동 기자
등록일 2012-01-30 21:31 게재일 2012-01-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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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학교 교수

최근 학교 폭력 문제가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따돌림, 폭력, 자살이라는 연쇄 고리가 대구에 이어 대전, 광주 등 여러 곳에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해 전 일본에서 학생들 사이에 횡행하던 왕따가 어느새 우리 교실에도 이식된 지 오래다. 학생들의 왕따와 폭력은 이제 우발적 폭행이 아닌 범죄수준에 이르고 있다. 약한 학생을 담배 불로 지지고, 피멍이 들고, 먹이 사슬을 통해 금전을 갈취하는 현상이 마치 조폭 문화를 연상케 한다.

얼마 전 중등학교 교사인 제자는 수업시간에 자고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우면 도끼눈을 뜨고 거칠게 항의해 이제 그대로 둔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수업시간에 게임을 하는 학생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여교사를 폭행한 고교생도 있다니 이를 어찌할까. 과거에 비해 변해도 엄청나게 변한 교실 풍경들이다. 그동안 교육 당국은 무엇을 했으며, 어찌하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는 연일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보도하지만 아직도 중구난방식 해법만 난무할 뿐이다. 정책당국, 일선 학교, 학부모 단체가 모두 임기응변식 긴급처방을 앞다퉈 내 놓고 있다. 교육감들이 앞장서 학교 폭력 방지 결의 대회를 하고, 교육청별 긴급 공문을 하달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의 지도는 이제 경찰에 맡겨야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육계 단체 대표들과의 청와대 긴급 회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긴급 상황에서 `학교 폭력`의 근절을 위한 응급조치도 필요하고 `일벌 백계식 처방`도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급한 불끄기 식`의 응급조치는 근본적인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학교 폭력은 청소년의 단순 비행이 아니고 학생, 학교, 학부모, 우리 사회가 연계된 구조적 병리 현상이다. 이번 자살한 학생의 유서에서 보듯이 피해 학생은 보복이 두려워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고, 가해 학생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학교 선생님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한대도 학교는 성적과 입시교육에만 매달려 있다. 생업에 바쁜 부모 역시 자녀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지 그들의 고민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자식만 다치지 않으면 되지 다른 자식의 탈선과 비행은 아예 관심도 없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학교 폭력의 본질이다.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긴급 조치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오도된 교육 풍토부터 바꾸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지만 지나친 경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교육의 서열주의와 입시 경쟁이 곳곳에서 악의적인 경쟁구조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학력향상을 위해 전국의 중고교를 서열화하고, 자율형 고교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일류 교 제도까지 부활을 부추기고 있다. 언론에서는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숫자까지 보도하여 더욱 서열경쟁을 과열시키고 있다.

이러한 구도 하에서 성적이 뒤지고, 소외된 학생들은 과연 어디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낙오된 학생들의 열등의식과 수치심이 주변의 미운 자, 약한 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몇 달 전 호주의 쾌적하고 여유로운 고교 생활을 보면서 우리의 입시에 일그러진 불쌍한 고교생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교육 당국은 성적만을 따지는 교육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야 한다. 전체학생을 서열화하는 교육정책은 머리 큰 학생은 만들지라도 가슴이 뜨거운 학생은 육성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 영수국 중심으로 개편된 교육과정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도덕과 예체능을 통한 인성 교육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한다. 그러할 때 신명나는 선생님들이 교단을 튼튼히 지키면서 참된 인격교육에 매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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