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식 올려 기뻐”
21일 오전 안동 웅부공원 영가헌 앞마당에서 안동시 길안면 김사준(40)·문지숙(38) 부부의 전통혼례식 장면이다.
수백여 명의 하객이 모인 가운데 사모관대 쓴 신랑 김씨,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에다 전통 예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 지숙씨도 생소한 전통혼례 방식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전통혼례의 주인공이 된 이들 부부는 10여 년을 함께 동거하며 자식 둘까지 얻었지만 번듯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 안동향교에서 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대상으로 전통혼례식을 치러 준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신청해 성사됐다.
거창한 장식과 화려한 조명은 없었지만, 이 두쌍은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으며 고풍스런 영가헌(永嘉軒)을 무대로 백년의 가약을 맺은 것이다.
비록 약식으로 치러진 혼례였지만 함잽이(함진아비) 행차부터 폐백까지 갖춰야 할 건 다 갖췄다. 이날 진풍경에 길손들도 걸음을 멈추고 근래 잘 볼 수 없는 이들 주위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날 안동향교 의례보존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치러진 전통혼례는 김사준·문지숙 부부가 올해 들어 2번째다.
안동향교는 지역 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와 전통방식으로 혼례를 원하는 예비부부에게 전통혼례를 치룰 기회를 주고 있다. 재혼부부를 제외하고 혼례비용이 부담스런 부부에게 새 출발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전통을 고수하자는 의미에서다.
늦깎이 신랑 김사준씨는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결혼식을 못해 부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향교의 도움을 받아 늦게나마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어 매우 기쁘다. 무엇보다 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치른 전통혼례라서인지 더욱 의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동향교 류기홍 전교는 “서양식 결혼식과 달리 전통혼례식은 예법이 까다롭고 생소해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많지만 전통혼례의 활성화로 새내기 부부들이 백년가약의 연을 보다 진중히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