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휴지를 갖고 다니면서 4등분해 쓰고 메모지도 이면지를 이용해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S은행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한 기업가가 타계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경북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5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의 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재일교포 상공인들과 함께 신용조합을 세웠고 순수 민간자본으로 은행을 창립한 그의 이름은 `이희건`이라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모진 서러움과 추위와 배고품을 견디면서 오로지 정직·근면·신용으로 기업의 총수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베푸는 정신만 가득한 기부자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조국의 번영과 성공을 기원하면서 100억엔을 모아 조국에 기부하는 등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했던 우국투사였다. 정말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았지만 그의 근면과 겸손은 훈장보다 더욱 값진 자본이었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외화 부족 상황에 처하자 일본에서 바라만 볼 수 없다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밤잠을 설치다 `국내 송금하기 운동`에 적극 앞장서 실천을 주도하기도 한 인사였다고 한다. 애국지사만큼 그의 업적은 많은이들의 귀감이 되고 존경스러워진다. 조그마한 은행에서 시작된 그의 금융업은 가장 안정적인 우량 금융회사로 키워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평범한 것이었다. 평소 임직원에게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죽으면서도 주주총회가 끝날때까지 자신의 부고를 알리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가족장을 치렀으며 조객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인의 창업이념은 오직 조국을 사랑한 거목으로 일생을 마친 거룩하신 분이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