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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남도열차

이창훈기자
등록일 2011-07-18 21:24 게재일 2011-07-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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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섬진강 따라 경남·전라도 풍경 한눈에

“그동안 남도여행을 해보고 싶었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접근성이 나빠 이리저리 미루기만 했습니다.” “장동건과 현빈이 금방 나올 것 같아요. 전에 감명받으며 봤던 영화 촬영지에 오니 기분이 특별합니다.” 막 운행을 시작한 동대구발 전라도행 `남도열차`의 첫 여행객 김민숙(41) 이정아(41)씨는 저렇게 들떠 했다.

이들을 태우고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돌아보는 남도열차 새 노선 개통식이 열린 것은 지난 16일 오전 7시 동대구역. 사상 처음 출발하는 열차이니 만큼 간단하나마 축하행사를 빠뜨릴 수 없었다. 그런 다음 열차는 정확히 7시21분에 첫 기적을 울리며 동대구역 플랫폼을 빠져 나갔다. 처음 타는 선로는 경부선. 경산, 청도, 밀양을 지나 삼랑진까지 그렇게 달렸다.

동대구역서 오전 7시21분 출발 3시간 20분만에 하동

나로호 발사 고흥 등 8개 테마별 여행프로그램 배치

추억의 증기기관차 시승… 사성암 오르니 탄성 절로

그리고는 삼랑진에서 경부선을 벗어나 우회전, 경전선으로 바꿔탔다. 이후 이어가는 길목이 창원, 마산, 진주, 하동을 거쳐 순천까지였다. 남도의 유명 관광지로 부상한 나로호 발사지역 고흥,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명산 강천산, 기차마을의 곡성, 녹차밭의 보성 등등으로 나눠 설정된 8개 테마별 여행프로그램이 그 사이에 배치됐다. 돌아보는 시간은 대체로 당일 혹은 1박2일.

이 남도열차는 대구권과 전남권역 사이의 여행 편의를 위해 코레일이 고안한 것이다. 두 지역 사이엔 여행객이 늘어나는데도 접근성은 개선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남도열차는 일단 오는 12월까지 운행토록 계획이 잡혔다.

저 열차의 여행프로그램 중 하나인 곡성 기차마을과 사성암 코스를 향한 첫날인 지난 16일 대구·경북을 출발한 사람은 모두 36명이었다. 여행사에서 프로그램을 인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이날 하루만은 팀을 이룬 관광동료가 돼 종일을 함께 했다. 취재팀도 그에 합류했다.

동대구역에서 일부가 타고, 경산, 청도, 밀양을 거치면서 여행객들이 속속 합류하자 기차 안은 학창시절 수학여행 분위기로 부풀어졌다. 사람들은 3~4명씩 팀을 이뤄 의자를 마주보게 돌려놓고 막걸리와 맥주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계 등 소모임 친구들이거나 부부, 연인 사이가 많았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3~4명 있었다.

경산에서 왔다는 이미숙(45)씨는 듣고보니 이미 오래된 열차여행 예찬론자였다.

“평소 여행을 좋아해 여러 곳을 다니고 있으나 혼자 전라도까지 승용차로 가기는 버거웠습니다. 비용이나 운전 중 무료함 등 여러가지 힘드니 가기 쉽잖았던 것이지요. 열차로 여행하면 저런 단점들을 극복하고 혼자 생각에 잠길 여유가 생기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열차여행을 많이 하는 이유입니다.”

열차가 청도를 지날 즈음, 차창 밖으로 문득 `새마을 주유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웬 새마을? 싶어 둘러보니 청도읍 신도리다. 새마을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동네. 새마을 마케팅이 한창인 시절이어서 주유소까지 그 이름을 달았나 싶어 웃음이 새 나왔다. 우리나라 상술도 중국 비단장수 왕서방 못지않아졌다는 얘기겠지?

창원, 마산을 지나 하동으로 접어드니 차창 밖 분위기가 웬지 달라지는 듯하다. 넓지 않은 대한민국에 그 사이 뭐가 달라졌을까 마는 대구권서 조금 멀어졌다고 해서 괜히 마음이 먼저 그렇게 느끼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전 10시40분 하동역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을 출발한지 3시간20여분만이다. 취재팀이 함께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여기가 하차 역이다. 일차 목적지는 곡성의 기차마을. 하동에서 곡성까지는 섬진강 강변도로로 달리는 버스로 약 1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토지 주무대인 평사리,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화개장터 등을 지나는 내내 하동 상징인 배밭과 녹차밭이 이어졌다. 반짝이는 섬진강 은빛 물결과 조화를 이룬 그 모습이 참으로 편안했다.

곡성 기차마을은 옛 곡성역을 꾸민 것이었다. 전국에 화제를 불렀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드라마 `토지`의 명장면들이 촬영된 곳이어서 그 장면들을 그리워하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고 했다. 특히 주말이면 부산 마산 진주 광양 등 먼 곳에서까지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얘기. 곡성역에 근무하는 코레일 직원은 남도열차 개통으로 기대가 더 커졌다고 했다. “앞으로 대구와 그 인근 구미 경주 포항 등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 올 걸로 기대합니다. 전에는 오기 쉽잖았겠지만 이제 달라졌지 않습니까. 새로운 볼거리가 많은 만큼 틀림없이 후회않는 여행이 될 겁니다.”

곡성에서의 자유시간은 3시간이었다. 물론 영화촬영지를 둘러보는 게 우선. 앞서 만났던 김민숙, 이정아씨가 감탄을 마지못했던 것도 여기서였다. 이들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포스터 앞에서 소녀 같이 즐거워했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남도를 한번 다녀와야지 벼르다가 남도열차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자말자 예약해 기어이 꿈을 이뤘다고 했다.

이어서 일행을 기다린 것은 가까운 가정역을 왕복하는 추억의 증기기관차였다.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하얀 김과 기적소리를 내며 출발하는 증기차는 생각 밖에 만원이었다. 함께 마련돼 있는 레일바이크를 탈 사람들이 더운 날씨 탓에 이리로 몰린 때문일까. 어쨌든 4량이나 연결된 증기차가 만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구 포항 등등에도 이런 여행상품을 개발할 여지는 없을까… 어딜 가나 못버리는 게 집 걱정인가 싶었다.

증기차 안에는 가족 단위의 일본인 여행객도 있었고, 효도여행 온 듯한 가족들도 있었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도 큰 승객이었다. 객차에는 옛날 기찻간에서 팔던 달걀과 사이다 장수가 구수한 입담으로 여행의 동반자가 돼 주고 있었다.

증기차 종점인 가정역 앞 섬진강에서는 아가씨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물장구 치느라 걀걀 넘어가고 있었다. 서울서 대학 다닌다는 이들은 방학을 맞아 전라도를 답사하기 위해 친구들과 조를 짰다고 했다. 그 중 박정희(21)씨는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전라도 풍경은 서울과 너무 달라 여행의 묘미가 실감된다”고 했다.

증기차에서 내리면 오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사성암. 하지만 절에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버스로 구례읍 죽미리까지 간 후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약 3.2km를 더 가야 했다. 길도 포장과 비포장길이 교차했다. 차창 밖으로는 엄청난 낭떠러지가 아찔했다.

하지만 꼭대기 사성암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솟았다. 25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세워졌다는 법당은 세계적 관광지인 중국의 유명 사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 싶었다. 하찮은 서민이면서도 사성암에 올라 산 아래를 보니 인간사가 가소롭다는 생각이 드니 이 일은 또 어쩌나. 무심결에 떠오른 게 서산대사의 시.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천하의 호걸들은 초파리라. 달밝은 창가에 누웠으니, 솔바람이 멈출 줄 모르네.` 사성암은 원효, 진각, 의상, 도선 등 4대 고승이 수도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했다.

/이창훈기자

myway@kbmaeil.com

매주 주말 정기노선 1편 운행

동대구역:오전 7시21분 출발

순천역:오전 11시15분 도착

문의

참조은 여행사 (053) 255-0533

삼성여행사 (053) 43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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