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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서 신앙생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7-08 23:03 게재일 2011-07-0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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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연령이 증가해 노령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들은 인생을 보는 시야도 넓게 변해 간다. 지구를 꽉 채우던 인생의 여러 문제도, 책 한권 속으로 좁혀진다. 복잡하던 생각도 머리속에서 정리될 수 있다.

현실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살아온 노인은 이제는 현재의 자기 수준을 넘어 초자아의 경지로 몰입하게 된다. 이들은 혼자 있어도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현실보다는 좀더 우주적인 경지에 와 있다. 현실에서 초월하여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느끼게 되는 수준에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는 아옹다옹, 속고 속이고, 안절부절했었다. 매일 긴장과 고뇌를 생활 속에서 감지하고, 투쟁적으로 살면서 항상 불안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이 경험으로 변해 가슴 속에 차곡차곡 내재되어 진다. 젊은 시절에는 과격할 수도 있었으나, 이제는 과거의 더러운 것은 창자에서 소화되어 폐기물로 변하여 항문 밖으로 던져 진다.

노인은 더 이상 잡다한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피상적인 삶을 살지 않고, 사색의 깊은 경지 속으로 몰입한다. 이들은 인생을 엄격하게 보지 않고, 오히려 여유와 유머를 가진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한 번 더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확인해 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생명의 근본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자기의 생명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모를 어떤 의도 하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존재의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드는 것은, 바로 영적인 여행을 시작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규칙적인 하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고령에는 그것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어서 매일 감사할 뿐이다. 이러한 의식으로 인해, 노인은 살아 있는 것을 기쁨의 원천으로 느끼게 된다. 고향을 찾은 느낌이다.

늙어서 생활이 단순해지면, 그들은 매일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한다. 노령에는 영성이 점점 단순해진다. 기도의 형식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유로워진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둔다.

세상만사를 다 겪어 본 그들은 이제는 자기 자신과 남들을 판단하지 않고, 세상만사와 화해를 모색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며, 세상일을 선전하기에 바쁜 TV프로그램에는 관심도 없다. 오직 자기의 마음속을 관찰하려고 내면을 향할 뿐이다.

노인들은 본시 시끌벅적한 것보다도, 고요함과 묵상을 훨씬 더 즐긴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을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를 그려 본다. 그는 존재의 근원인 신에게 순응하고, 하나님 품안에서 존재함을 즐겁게 생각한다. 이때는 힘이 줄어들어서, TV에서 나오는 예배 순서에 겨우 참석할 수 있을 뿐이다. 노인은 젊었을 때의 기도문을 새로이 써 보기도 하고, 몸에 익은 기도나 예배 형식에서 향수를 느낀다. 예전에 자주 쓰던 기도문에서 새삼 감동을 느끼고, 이런 것에서 그는 하나님에게 깊은 신뢰를 보낸다. 어린 아기는 아니지만 점점 아기와 같은 기도를 하게 된다.

노인의 힘은 자꾸만 소실되어 간다. 이제는 교회에서 갖던 예배 형식에 몸을 지탱할 수 없다. 기도도 짧게 몇몇 단어로 표현한다. 늙어 감에 따라 마음이 가난하게 되어, 영성은 기도나 침묵으로 대치되면서 줄어든다. 더 힘이 빠지면 표현하기가 힘들어서, 기도 후에 “아멘”이라는 말 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고령자는 교회의 예배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건한 말이나, 긴 기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는 이제 하나님 세계로 점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노인의 일생은 끝이 난다.

노인들의 신앙심은 청장년의 생각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노인이 생각하는 인생의 시작과 끝남, 삶의 원동력과 추진하는 주체, 인생의 지향점 등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의 하나님은 내가 소유하고 싶던 하나님이 아니고, 나를 지배하여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완벽한 하나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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