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밀양이 선택됐다면 부산쪽 반응이 어땠을지도 상상할 수 있다. 김해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이를 확장하는 문제인데 왜 대구에서 들이대느냐는 부산의 정서였다. 이 갈등이 결국 중앙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백지화시키는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 밖에는, 대구나 부산 모두 `만약`을 준비하는 `히든 카드`나 협상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은 중앙의 논리보다 그 중앙의 논리에 날개를 달아 준 지역이기주의 내지는 지역간 갈등이었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지난 달 27일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에서 허남식 부산시장 박맹우 울산시장 김두관 경남지사와 함께 만나서 잘해보자며 손을 잡았다. 5명의 광역단체장이 손에 손을 잡고 그 손을 높이 쳐들고 활짝 웃는 사진이 지역신문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상생이나 화합 같은 긍정적 어휘들이 대문짝만하게 박혔다. 그리고 찬사도 쏟아졌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들 단체장은 만나기 전에 의제를 사전 조율했고 비공개 토의까지 한 뒤 `영남권 상생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공동합의문`이라는 긴 제목의 합의문도 발표했다. 그러나 의제에는 당연히 들어갔어야 할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빠졌으며 합의문 어디에도 신공항 재추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이에대해 대구시의 한 간부는 “(신공항 문제를) 의제에 넣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토로했다. 합의문의 문구 등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훨씬 낫다고 판단한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앞으로 자주 만날 것이니 물꼬를 터 놓고 서서히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첫 단추를 뀄다는 자체 평가다.
물론 3년만의 영남권 단체장들의 만남이라는 의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다망한 단체장들이 한 자리에서 어려운 만남을 이루었다면 무엇인가 주고받는 것이 있었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았을까 해서다.
이날 회동에서 김 대구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신공항 사태를 겪으면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영남권이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수도권 중심주의를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바보 도 통한 소리`를 해댄 것이다. 김 경북도지사도 “신공항 때문에 서로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앞으로는 영남권이 인식을 같이 해서 중앙정부와 조율해 나가야 한다”며 영남권이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신공항 갈등을 `발전 지향적인 불가피한 갈등`이라고 분식하고는 “그러나 지나쳐서 하나가 되지 못하면 모두가 손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모두가 진작에 이런 모임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대구의 한 특강에서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을 중앙집중식 논리보다는 `밀양이냐 가덕도냐`라는 논란에 매몰된 때문이라 인정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영남권 5단체장들이 만나 밥 먹고 `앞으로 잘해보자`며 손잡고 사진찍고 헤어졌다. 신공항은 공식 의제로 채택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합의문에도 넣지 않았다. 아무도 신공항 입지와 관련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어떠한 양보도 타협도 없었다. 시도조차도 없었다. 단언컨대 밀양이냐 가덕도냐는 식의 논란을 해결하지 않고는 신공항은 성공할 수 없다. 알맹이 없는 모임이라 비난하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