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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살리는 삶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6-30 23:23 게재일 2011-06-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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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서울의 서교동, 홍대입구 전철역 주변은 필자가 가장 흥미로워 하는 곳의 하나다.

한국에서 가장 첨단적인 젊은이 문화를 가진 곳이어서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탐구할 가치가 있다. 공교롭게도 필자는 이 주변에서 15년 넘게 살아오는 통에 이곳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보면 분명 한국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이있다. 며칠 전 필자는 홍대입구 전철역 주변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어 까페를 찾게 되었다. `아쿠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행 까페가 있어 몇 번 보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터라 이번에는 그곳에 한 번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까페는 5층에 있었는데, 아무런 장식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주인 내외가 사람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 까페 주인이라는 사람, 아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행 까페라는데 뭔가 여행 냄새를 풍기는 게 없어 혹시 책자라도 있는가 해서 묻자 `우리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집도 없이 까페를 집 삼아 손님들이 다 떠나면 그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철학, 여행철학을 담은 `집보다 여행`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칠 개월을 외국을 떠돌면서 또 생각한 게 있다고 했다. 외국 여행을 하더라도 여행자로서 여행하는 것과 그 지역 주민으로서 여행지에 머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그는 여행자 의식과 로컬 의식이라고 했다. 필자는 그의 생각이 아주 새롭다고 느꼈다. 지금까지는 여행의 기간을 가지고 그 기간이 짧으면 여행자, 길면 체류자라고 생각해 온 것이 통례인데. 이 사람은 단지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영국에 가서 두 달을 살더라도 로컬 의식을 가지고 살면 여행자 의식을 가진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로컬 의식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여행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해외 여행은 사실은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쇼윈도에 전시된 물건들을 보듯, 쇼를 보듯,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인공적으로 마련된 `가짜` 삶을 보고 오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고 했다. 필자는 지금 그의 이야기를 단순화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로컬의식을 가지고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자를 위해서 마련된 `쇼`가 아닌 그곳의 진짜 삶을 만날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질 것이다. 그는 앞으로 여행이 그렇게 변화되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으며, 그런 방향에서 좋은 여행, 즉 여행자와 현지 사람들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이 여행가의 말을 들으며 한국 사회는 얼마나 많이 변화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곳을 보면 귀농이라고 해서 도시를 버린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느 곳을 보면 도시 안에서 생활 공동체, 교육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밤마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자녀 교육에 대해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활의 고정성에서 벗어나 생기 있는 삶, 유동하는 삶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이제 사람들은 주어진 생활, 주어진 관습과 규약에 만족하지 않는다.`자기`를 죽여야 하는 삶에 동의하지 않고 자기 생명을 살리면서도 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려는 새로운 창안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의 삶의 변화, 사람의 변화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문득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되짚어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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