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목사가 되어 최전방에서 군 생활할 때, 분단의 아픔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천 3사관학교 교육을 마치고, 성남 종합행정학교 후반기 교육도 마무리 되어갈 즈음에 결정된 임지는 강원도 인제 원통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었다. 내심 서울에서 가까운 곳, 경기도 지역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뜻밖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인천이나 경기도 지방으로 가게 된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심지어 `홍천만 되어도 좋았을 것을…`하는 마음도 떠나지 않았었다. 그날 밤은 왠지 힘이 나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이 다가왔고, 홀연히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9) 익히 아는 말씀이었지만, “네가 어디로 가든지”가 가장 은혜가 되었다. 그때 나의 마음에는 자유가 찾아 왔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나를 사용하실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은 기쁨이 되었다.
최전방 부대에 근무하면서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해 철책을 오르내렸다. 철책의 야경은 절경이었다. 산등성이를 굽이치며 동에서 서로 연결된 155마일 휴전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휴전선을 따라 투광등이 설치되고,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하면 155마일 휴전선은 투광등 불빛으로 하나가 된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투광등 불빛의 행렬은 감탄사를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에 반해 북쪽은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작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한 눈에 그 땅은 어둠의 땅임을 알게 된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북한으로써는 투광등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 때 생각했다. `어둠속에서 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투광등 불빛을 보며 북한 병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가슴 한편에 비통함이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투광등 불빛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비통한 아름다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한반도를 둘로 나눠놓고 있는 불빛이기 때문이다.
한 민족, 한 핏줄이 서로 총을 맞대고 감시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소중한 시간을 전방 철책 앞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전방을 갈 때마다 북녘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평화통일의 그 날을 기도하였다. 지금도 나는 동족을 어둠속에 몰고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이 무너지기를 기도한다. 진리를 가장한 치졸한 가시덤불들이 제거되기를 기도한다. 무너진 제단들이 수축되어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한반도가 통일한국, 말씀한국, 선교한국이 되기를 기도한다.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리라 믿는다.
오늘도 투광등 불빛은 그렇게 비통한 아름다움을 내 뿜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