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부터 전 세계로 생활에서 물질주의가 팽배해져갔고, 현대적 교통수단의 발달과 기술과 과학 발전 등으로 사회가 복잡하게 변해 버렸다. 자연히 그들은 가정보다 시설이 좋은 병원에서 분만을 했고, 이웃에서는 아기를 낳았는지 모르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신적인 가치관은 물질문명으로 대치됐고, 이는 자녀 양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와줄 가족이나 낯익은 산파의 지원 대신에 고용된 간병인, 병원의 낯선 의사, 그리고 많은 수에서는 무통 분만으로 이뤄진다. 거의 모든 산모는 마취제 때문에 자신이 방금 참여했던 기적을 모르고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졸리는 모습으로 자기가 낳은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묻는다. 그 동안 아기는 피부접촉도 없이 가래를 빼고, 씻기고, 기저귀를 채워서,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게 된다. 짐승 새끼는 처음 며칠간은 어미 곁에 밀착해 삶을 시작하지만, 아기는 그렇지 않다. 그는 고도로 비인격적인 환경에서 삶을 시작한다. 시간이 돈이고, 일을 위해 시간을 바삐 사용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진보된 현대적 기술로 분만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산모는 방에서 마취제와 유도 분만에서 회복 하고 있는 동안, 아기는 간호사의 손에서 호흡을 하고, 소속된 영아실로 보내진다.
아버지들은 몇 시간 동안 병원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직장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전화로 기쁜 소식을 전해들을 뿐이다. 집에 있는 형이나 누나는 엄마가 새롭게 늘어난 식구를 어서 데려 오기를 기다린다. 아이들은 기적에 참여 못하고, 집에서 지루함을 느낀다.
남편들은 부인이 임신한 것에 대해, 사랑의 흥분은 커녕,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임신이 확실하냐? 혹시 생리가 늦은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여자는 고립을 느끼고 우울하나, 말 상대는 편지배달 아저씨뿐일 수도 있다.
사산하여 고통, 좌절, 분노 중일 때도 있다. 이때는 괴로움을 건전한 방법으로 대화를 나눌 사람이 꼭히 필요하나 혼자뿐이다. 특히 낳자 말자 불구의 애기를 가졌거나, 또는 어릴 때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을 때는 더욱 외롭다.
의사는 마치 공장에서 생산품을 다루듯이 기계적으로 처신한다. 불량품을 만들면 대인사고(對人事故)로 자기 책임이 되어버리므로 주의만은 대단하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직업을 안정시킨 후 아기를 가지려 하고, 아기에게 메이기 전에 아파트를 장만하려 한다. 또 자유로운 여행과 사교 활동을 원하고, 여러 도시로 전근도 많이 한다.
신생아는 옆에서 돌보아 주는 사람이 항상 곁에 붙어서 피부 접촉을 해야 한다. 젖을 통한 접촉을 계속하면 엄마의 혼과 육체를 애기에게 모두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