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수인선 열차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1-06-17 21:07 게재일 2011-06-17 23면
스크랩버튼
40여년 만에 수원에 갔었다. 그동안 수원시내는 몇 번 가 보았지만 추억의 아름다움이 깃든 곳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지금은 흔적과 자취만 남긴 수인선. 수인선은 수원서 인천 송도간을 잇는 협궤 철로다. 서해의 간바람을 타고 반달모양이 경기만 모퉁이를 따라가면 어느덧 주안, 소래, 군자 등의 염전지대가 전개된다. 서부영화에서 본 듯한 조그마한 전동차는 아침부터 장사진이다. 물경 반세기의 역사를 지닌 열차이니 신시대의 물품과 함께 숱한 애환과 낭만과 멋이 이 열차에서 비롯되었다. 수인선 열차는 일반 열차와 달리 한 칸 길이가 15m이고 폭이 2m인 작은 열차였다. 짭잘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차창밖 시골풍경은 너무 시골스러워 즐겁다. 52km 해안선을 타고 해수욕장으로 연결되는 열차인데도 장삿꾼 이외에는 승객이 적은 편이다. 가냘픈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리는 하루 3차례 왕래하는 것으로 수지타산은 아예 문밖의 일이다. 뱃고동 소리 대신에 칙칙거리는 열차의 바퀴소리는 승객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열차는 시골 냄새가 풍기는 들판과 갯마을을 서쪽으로 두고 염전을 지나 수원평야를 달린다. 차창을 내다보니 까맣게 잊혀갔던 옛 시절의 아픔이 가슴을 메이고 절로 눈물이 핑돌 정도로 추억은 하얀 구름처럼 일고 있었다. 그 흔한 선풍기 한 대 없어도 해풍에 밀려오는 소금끼 바람이 오히려 나그네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잊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동심의 세계로 거슬러 오르게 하는 이 열차의 압권은 역시 서해바다에 바치는 낙조이다. 때마침 간조 시간이 되어 바닷물은 저만치 멀어져 가고 갯벌 위에 붉은 페인트를 쏟아부은 듯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정열적인 낙조의 풍경은 보는 이의 전신을 물들게 한다. 태양의 빛도 점점 오렌지 색으로 변하고 저 먼 곳 바다 끝 외항선에서 불빛이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한다. 열차는 시발역이 있는 것처럼 종착역이 가까워 오고 있다.

/손경호(수필가)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