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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문제 단상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6-16 23:30 게재일 2011-06-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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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필자는 고등학생 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다. 가장 친한 친구 하나가 선생님에게 어디서 만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당구채로 아무데나 얻어맞을 때, 그런 때가 많아서 필자는 내가 선생님이 되어 선생님다운 선생님이란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결국 필자의 직업은 교수로 낙착되고 말았다.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도 몇 년을 룸펜 프롤레타리아처럼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고 하다 결국 논문을 써서 박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취직을 해야 했다.

참 괴로운 것은 대학 교수가 대학에 자리를 잡는 일엔 정해진 표준 매뉴얼이나 절차 같은 게 없다는 점이다. 학위를 취득한 후 얼마 있다 대학에 채용 공고가 난 것을 보고 지원을 하게 됐다. 그 학기에 모모한 대학들 세 군데에서나 필자의 전공을 필요로 한다고 신문에 났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원을 하게 되면 대개 채용 심사 절차를 3차까지 치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1차는 서류 심사. 서류를 낸 사람들 가운데 후보자가 될 만한 사람을 일차적으로 걸러낸다. 다음 2차는 공개 강의나 면접. 1차에서 걸러진 후보자들에게 시범 강의를 하게 하거나 심층 인터뷰를 해서 두 명 내지 세 명의 후보자로 압축을 한다. 마지막 3차는 대학 총장이 포함된 인사위원회에서의 면접 심사. 대개 2차 심사를 통해서 각각의 학과에서 압축해 올린 후보자 가운데 마지막 낙점을 한다. 이 마지막 심사에서 1순위 후보로 올라간 사람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세 군데 원서를 내서 두 곳은 2차에서 떨어지고 다른 한 곳은 3차에서 떨어지고 나니 갑자기 막막한 느낌이 밀려왔다. 도대체 대학 제도가 필자를 거부하는 것 같고 튕겨내려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내가 선택될 수 있는 건가.

독일의 학자 막스 베버는`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글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데는 수많은 불합리가 따른다고 했다.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한 사람이 교수가 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처럼 불합리한 것이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고 했다. 더구나 학문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 자기가 쌓아올린 학문의 탑이 나중에 올 사람들에 의해 부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학문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 발전의 메커니즘 속에서 학자들은 덧없는 계단을 형성할 뿐이다. 막스 베버가 학생들 앞에서 이런 강연을 한 때가 벌써 1917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운 좋게 필자도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첫 학기 등교 첫날 `내 학교` 학생들을 만나겠다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문에 들어섰다. 그때 필자 눈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하나가 들어왔다. 그 내용인 즉, 모모 교수는 지난 학기에 몇 번을 휴강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내는 등록금 액수에 비추어 볼 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당 얼마씩을 떼먹은 꼴이라는 것이었다.

교수가 된 첫날 이 대자보를 볼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필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등록금 인하 문제로 논란이 많다. 필자는 물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줄 방도가 단연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일부 신문이 이 문제를 보도하는 방향은 어쩐지 학생들과 교수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등록금을 얼마 올릴 때마다 교수 연봉이 얼마씩 오른다는 식으로, 재단이나 정부의 문제는 쏙 빼놓고 등록금 문제가 오로지 학생과 교수 사이의 문제인 것처럼 기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기업화하라는 말도 많고 학생들은 돈을 낸 소비자라는 말도 많다. 대학에 기업처럼 이익을 내라고 해놓고, 또 학생들에게 소비자의 권리를 찾으라고 하는 건, 어디 한 번 너희들 마음껏 반목해 보라는 뜻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다운 곳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교수들에게는 선생님다운 교수가 되라고, 그렇게 학생들을 보살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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