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결국 필자의 직업은 교수로 낙착되고 말았다.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도 몇 년을 룸펜 프롤레타리아처럼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고 하다 결국 논문을 써서 박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취직을 해야 했다.
참 괴로운 것은 대학 교수가 대학에 자리를 잡는 일엔 정해진 표준 매뉴얼이나 절차 같은 게 없다는 점이다. 학위를 취득한 후 얼마 있다 대학에 채용 공고가 난 것을 보고 지원을 하게 됐다. 그 학기에 모모한 대학들 세 군데에서나 필자의 전공을 필요로 한다고 신문에 났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원을 하게 되면 대개 채용 심사 절차를 3차까지 치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1차는 서류 심사. 서류를 낸 사람들 가운데 후보자가 될 만한 사람을 일차적으로 걸러낸다. 다음 2차는 공개 강의나 면접. 1차에서 걸러진 후보자들에게 시범 강의를 하게 하거나 심층 인터뷰를 해서 두 명 내지 세 명의 후보자로 압축을 한다. 마지막 3차는 대학 총장이 포함된 인사위원회에서의 면접 심사. 대개 2차 심사를 통해서 각각의 학과에서 압축해 올린 후보자 가운데 마지막 낙점을 한다. 이 마지막 심사에서 1순위 후보로 올라간 사람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세 군데 원서를 내서 두 곳은 2차에서 떨어지고 다른 한 곳은 3차에서 떨어지고 나니 갑자기 막막한 느낌이 밀려왔다. 도대체 대학 제도가 필자를 거부하는 것 같고 튕겨내려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내가 선택될 수 있는 건가.
독일의 학자 막스 베버는`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글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교수가 되는 데는 수많은 불합리가 따른다고 했다.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한 사람이 교수가 되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처럼 불합리한 것이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고 했다. 더구나 학문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금 자기가 쌓아올린 학문의 탑이 나중에 올 사람들에 의해 부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학문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 발전의 메커니즘 속에서 학자들은 덧없는 계단을 형성할 뿐이다. 막스 베버가 학생들 앞에서 이런 강연을 한 때가 벌써 1917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운 좋게 필자도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첫 학기 등교 첫날 `내 학교` 학생들을 만나겠다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문에 들어섰다. 그때 필자 눈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하나가 들어왔다. 그 내용인 즉, 모모 교수는 지난 학기에 몇 번을 휴강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내는 등록금 액수에 비추어 볼 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당 얼마씩을 떼먹은 꼴이라는 것이었다.
교수가 된 첫날 이 대자보를 볼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필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등록금 인하 문제로 논란이 많다. 필자는 물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줄 방도가 단연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일부 신문이 이 문제를 보도하는 방향은 어쩐지 학생들과 교수 사이를 떼어놓으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등록금을 얼마 올릴 때마다 교수 연봉이 얼마씩 오른다는 식으로, 재단이나 정부의 문제는 쏙 빼놓고 등록금 문제가 오로지 학생과 교수 사이의 문제인 것처럼 기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기업화하라는 말도 많고 학생들은 돈을 낸 소비자라는 말도 많다. 대학에 기업처럼 이익을 내라고 해놓고, 또 학생들에게 소비자의 권리를 찾으라고 하는 건, 어디 한 번 너희들 마음껏 반목해 보라는 뜻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다운 곳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교수들에게는 선생님다운 교수가 되라고, 그렇게 학생들을 보살피라고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