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발표된 선언문의 내용은 한반도에 희망을 주는 수준의 것이었다.
실제로 6·15 공동선언 후 남과 북은 전쟁의 긴장 없이 남북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에도 갈 수 있었으며 개성공단을 통하여 남과 북이 서로 이득이 되는 경제 협력이 이루어졌다. 남과 북의 학자들과 예술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국어학자들은 남북공동 국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자료를 주고받기도 했다. 통일이 바로 눈앞에 온듯했다. 6·15의 성과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관계는 거의 막장드라마의 수준이다. 거의 모든 교류가 중단되었고 서해바다에서는 국지전이라 할 만한 포격으로 남과 북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며칠 전에는 남북정상 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 사실을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혀서 우리정부에 망신을 주기도 했다. 남측에서 북에서 보면 사과가 아닌 그러나 남에서 보면 사과처럼 보이는 표명을 해달라고 북에 요구했다는 북의 폭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지금의 우리 정부와는 일체의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북의 태도에 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물론 북을 이렇게 격동시킨 원인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있다. 북의 주요 인물이 그러진 사격 표지판에 사격을 하고, 대북 비방 내용으로 가득한 풍선을 북으로 날려 보내 격동시키면서 한편으로 정상회담을 하지는 남측의 제의를 북은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을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북도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착각한 결과였을 것이다. 아마추어가 보더라도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였다.
우리 사회에는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남북 교류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6·15공동선언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을 때부터 달가워하지 않은 태도였다. 퍼주기를 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등의 비난이 그것이다. 남북교류의 열매는 반겼지만 그 외의 모든 통일에 대한 노력은 좌파로 매도했다. 남북교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민족의 장래보다는 자신의 입지에 관심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지울 수 없다.
이 시대를 탈이념의 시대라고 한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도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상 지구상에서 이념을 논하는 것은 무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언어가 담론의 중심에 있다. 왜일까. 우리 사회에서 이념을 들먹이는 이들은 기득권층이고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득권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좌파라고 몰아세운다. 분단된 우리의 현실에서 좌파라는 말은 곧 적을 뜻하니까 그보다 더 강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주류들은 스스로 보수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보수라고 할 수 없다. 보수는 전통적인 가치를 옹호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는 우리민족의 역사이며 민족주의일 것이다. 우리사회의 주류에 민족주의적 사고는 찾기 어렵다. 친일파, 이승만, 그리고 군사독제로 이어지는 권력의 흐름을 옹호하는 것이 주된 가치다. 주류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좌파라는 멍에를 씌워서 배척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6·15 공동성명은 그 빛이 바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