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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코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26 23:20 게재일 2011-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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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지난 4·19에 이승만 기념사업회라는 단체에서 4·19희생자들과 유족들의 4·19 희생자 추모행사장에 와서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4·19묘소 참배를 하려다가 유족들의 항의로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4·19 유족들에게 사과를 한 다음,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었음이 차츰 밝혀지고 있다. 그들이 내건 펼침막에는`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다.` `이승만 기념관 없이 국격을 논하지 마라.` 등의 문구가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국부, 즉 나라의 아버지라고 배웠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머리카락이 흰 노인의 모습의 사진을 보며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헌법을 고치기도 하고 부정선거를 치르다가 4·19 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4·19 정신은 이 땅의 민주와 자유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였다. 4·19는 고등학교 학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젊고 순수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없었을까?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상해임시정부를 배제하고 이승만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지사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이승만의 대한민국은 식민지 권력에 참여하거니 협력했던 사람을 처벌하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요직에 중용했다. 그 후에 국회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친일파를 조사하고 구속하는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는 해산되었다. 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의 편에 섰던 반민족주의자들을 청산하지 않고 출발한 나라의 국격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승만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8·15를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1950년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맞게 된다. 인민군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이 18만 명이라 한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과 미군들이 저지른 제주 4·3, 거창양민 학살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의 양민학살 사건에 의해서 희생된 사람의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이승만은 4·19 혁명에 의해 물러난 분이다. 그가 물러난 것은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도 독재자를 기념하는 나라는 없다. 독일의 히틀러도 캄보디아의 폴 포트도 기념하지 않는다. 국민들에 의해 처벌된 사람의 기념관을 세우고 동상을 세운다는 발상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승만의 대한민국으로부터 빚어진 일로 인하여 그 과거사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을 조사하여 다행하게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사실보다 밝혀지지 아니한 사건이 더 많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독재자라 불린 이를 기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은 이승만을 기념하려 하는가? 누가 역사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했던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른바 기득권층에 속한 세력이 친일파에서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친일파 계열이 아직도 우리사회의 강자이다. 민주화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민주인사들이 죄파라고 매도당하는 것은, 친일파에서 이승만으로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으로 이어지는 이승만 코드의 세력들이 이 사회의 기득권세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 이승만 코드가 단절되었던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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