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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형 인간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24 23:03 게재일 2011-05-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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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안/포항중앙교회 부목사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단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누군가는 여행은 `여자의 행복` 줄임말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여행을 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이다. 밥 걱정 안 해도 되고, 차려 주는 것 먹고 설거지 할 일도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좋은 구경도 많이 한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보다는 여자들끼리가 더 행복하다고 한다. 아마도 남자들이 짐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반쪽 행복여행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현실과 삶의 비범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다. 보고 생각하고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배움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여행에서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능하다. 그 방법은 `묵상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엮은 잠언 24장 30절부터 34절에서는 어느 지혜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지혜자는 어느 날 게으른 자, 지혜 없는 자의 밭을 지날 때가 있었다. 거기에는 가시덤불이 퍼졌고,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은 무너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이 깊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서 “훈계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훈계의 내용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하면,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다”는 사실이었다. 지혜자는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자세히 보았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이 깊었다. 그리고 훈계를 받았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묵상형 인간으로 사는 삶의 원리를 보여준다.

첫째, 잘 보는 것이다. 30절에 “내가 본즉”, 32절에 “내가 보고”, “내가 보고”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건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주의 깊게 보는 것. 관찰했다는 표현이 맞다. 영어로는 Observation이다.

묵상의 대가 예수님은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그냥 보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계신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예수님의 일상은 묵상의 주제였고, 가르침의 주제가 되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도 묵상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잘 보아야 한다. 망원경으로도 보고 현미경으로도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어 성경에서 “apply my heart(내 마음에 적용했다)”라고 표현한다. 관찰하며 본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생각의 깊이는 수심 몇m 일까? 얕은 생각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깊은데서 건져 올려야 한다. 수심 600m 광천수, 깊은데서 건져 올릴수록 좋은 것 아닌가. 관찰하면서 생각을 하되, 깊은 생각을 한다. 아무리 많이 보아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묵상이 깊어질수록 깨달음은 커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교훈을 받아 행동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배가 아프세요. 어떻게 아프세요. 여기는 어떠세요” 잘 관찰하고, 말하기를 “맹장염이군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관찰하고 깨달았으면, 행동을 해야 한다. 진정한 묵상형 인간이란 보고 깨달은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여행을 떠나면서 동행하는 사람들과 같이 많은 것을 보고 깊이 생각하고, 교훈을 받고, 또 그대로 살아가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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