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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의 리비아에서 북한 읽기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23 23:32 게재일 2011-05-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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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환 `아시아`발행인·작가
최근 나는 두 편의 귀한 에세이를 읽었다. 카다피 독재의 리비아를 무너뜨린 혁명에 대해 두 작가가 쓴 `리비아의 내면에 대한 보고`라고 할 만한 글로서, 북한에 대하여 다시 사색할 어떤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먼저, 아랍권의 대표적 여성 작가 파크리 살레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독재자는 모든 정치권력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사상에 대해서도 완전한 통제를 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지난 42년 동안 자행했던 것이다.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이 중등교육과 대학교육 제도의 토대를 확립하여 지적, 문화적 삶의 번영을 이루고 있을 때 리비아의 교육제도는 파탄에 이르고 문화는 시들어 갔다. 그 이유는 바로 혁명적 이론으로 리비아의 사상, 정치,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망상에 사로잡힌 카다피가 자신의 `녹색서`(Green Book)에 제시된 생각과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나는 카디피의 `녹색서`를 읽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리비아의 사상적 바이블로서 시민들의 세계관 형성을 지배하는 유일의 지도서가 되어 모든 지식과 과학적 탐구의 근간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했다는 단편적 정보나 아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얼마든지 김일성-김정일로 세습된 북한의 `주체사상`을 상상할 수 있다. 모든 저작물의 첫머리에 위대한 어버이 수령의 존함을 등장시키는 평양 기득권 두뇌들이 앞으로 <주체사상>을 어떻게 수정해 나갈지 몰라도 그것은 마치 카다피의 `녹색서`처럼 북한 인민들의 바이블로서 세계관 형성을 지배하는 유일의 지도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과연 `녹색서`가 지배한 리비아에서 젊은이들의 삶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이 궁금증은 A.J.토마스라는 인도 작가가 풀어준다. 지난 2008년 4월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포스코의 후원을 받아 계간 문예지 `ASIA`가 포항에서 개최한 `아시아 작가대회`에 참여했던 A.J.토마스는 2008년 10월 지중해와 가까운 리비아 아지다비아의 대학 분교로 출근하게 되었다. 인도 뉴델리에서 영문 문학지인 `인도문학`의 편집자로 있던 그가 리비아로 옮겨간 까닭은 `급여가 매우 좋은 조건` 때문이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정치와 종교는 일절 언급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 것으로부터 강의를 시작한 A.J.토마스의 눈에 비친 리비아 학생들은 한마디로 “태평하고, 놀기 좋아하며, 멋 부리기 좋아하고, 게을러 보였다” 대다수가 유럽 축구 클럽 팬으로서 그 유니폼을 입고 다녔으며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믿기 어려운 변화를 일으켰다. 몇 천 명이 거리를 행진하며 카디피 퇴진의 구호를 외쳤다. 무기고를 탈취하여 총을 들었다. 카다피의 군대에 맞서는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마저 서려 있었다. 중요한 공공장소마다 걸려 있던 카다피의 초상화를 끌어내리고 사정없이 훼손했다.

A.J.토마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났지만 리비아 젊은이들은 액션 영화를 감상하듯이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그저 시위를 구경이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체 무엇이 리비아 학생들을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물론 인간은 누구나 억압과 굴종에 대한 한계적 본능을 타고났으니 42년이면 그 임계 상황에 닿았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나는 그의 글에서 두 가지를 주목한다. 하나는 “경솔한 논평가들의 주장과 달리 궁핍은 리비아의 골칫거리가 아니다. 식량은 싸다. 물보다 기름이 싸서 일반 시민들도 자동차나 소형 트럭을 소유하고 있다. 공공시설이 양호하고 위생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인터넷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카다피의 둘째 아들이다. 인터넷이라는 마법사가 무슨 일을 벌일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빈곤하지 않다.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 이것은 카다피의 리비아와 김정일의 북한이 무척 다른 조건이다. 오랜 굶주림은 저항할 영혼의 기력마저 고갈시키고, 정보의 차단은 소통의 광장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카다피의 리비아에는 그를 칭송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국외로 망명하여 그의 독재체제에 맞선 작가들도 있었다. 왜 북한에는 망명하는 작가들이 없는가? 이 역시 절대빈곤과 절대세뇌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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