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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물을 찾아서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19 23:36 게재일 2011-05-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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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 서울대 국문과 교수
대전에서 고등학생들이 서울대학교를 방문하고 싶다면서 빈 강의실을 잠깐 쓸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대전은 필자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닌 곳, 말하자면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토요일 날 빈 강의실을 잠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고 진학을 위한 견학 방문이기에 잘 처리해 주었더니 내친 김에 학생들 앞에서 몇 분 정도 학교 소개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교 소개라. 어떻게 해야 하나?

저희 학교에 대해서 말하자면 뭣보다 사계가 아름다운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이 되면, 여러분이 앉아 계신 강의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나무가 무슨 나문지 아세요? 벚꽃나무입니다. 봄이 되면 이 학교는 온통 개나리, 진달래, 벚꽃나무 천지가 됩니다.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내리면 흰분홍 벚꽃비가 내리는데 학생들이 넋이 빠져 강의를 할 수 없을 정돕니다. 여름에는 이 연두빛, 녹빛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청록색 짙은 푸른빛을 띠는데 이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푸른 빛도 노랑 빛, 빨강 빛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을에는 어떨까요? 학교 본부 건물과 도서관 건물 사이에 서 있는 나무들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나무들은 느티나무입니다.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것은 벚꽃나무보다 느티나뭅니다. 느티나무 단풍은 단풍나무 단풍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겨울. 이곳은 관악산 아래여서 서울 다른 곳보다 평균 2도 정도가 낮습니다. 겨울에는 더 춥죠. 그래서 그런지 눈이 참 좋습니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볼 수 있는 때가 많습니다. 그 길을 걸어 데이트도 할 수 있고 생각도 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실, 저희 학교는 1975년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원래는 동숭동 대학로에 건물이 있었는데, 새로 이사 오면서 건물을 지은 까닭에 유서 깊은 건물이 없습니다.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같은 곳은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건물이 참 좋습니다. 저희 학교는 그렇지가 못하고, 또 지난 20년 간 빈 공간에 건물을 빽빽이 지어 넣으면서 경관이 많이 상했습니다. 1975년에 캠퍼스가 생겨날 때 지어진 건물들은 아름답지는 못해도 그것들대로 통일성이나 조화가 있었는데, 그 후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건물들은 디자인도 제멋대로 크기도 제멋대롭니다. 먼저 지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학교다운 멋과 아름다움을 가진 건물이면 좋겠는데, 철제빔을 턱턱 박아놓고 외벽이며 유리를 붙여놓는 식으로 하나같이 싼 맛을 풍기는 바람에, 어떤 때는 제가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 캠퍼스는 난개발의 상징이나 되는 듯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들 지원을 받아서 건물을 지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뭐라 말할 수 없는데, 캠퍼스 전체를 총괄하는 능력이나 시선이 결핍된 나머지 건물들이 크기만 크고 학교다운 멋과 아름다움은 빈핍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이런 빈곤함을 메워주고 보충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관악산 자연.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 건물들의 볼썽사나움을 가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결국 또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이다.

인천공항은 공항 평가에서 1위를 거듭할 만큼 정평이 있다고 하니 뭐라 말하기 어렵고, 서울역부터 살펴보면, 일제시대 때 지어진 전통적인 서울역사 옆에 지은 철제빔과 유리창 일색의 천편일률적 외관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시민들의 막대한 세금을 들여 짓는 시청들, 구청들의 청사는 또 어떻던가? 서울역 같은 삼류 디자인 역사를 본떠 중요 도시 거의 모든 역사 건물이 이런 식인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통과해 가고 있는 현대의 천박스러움을 다시 한 번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역사는 유물이 아닌데, 과거의 것들은 원형대로 보존한다면서, 새로운 건물 짓는 걸 보면 이건 어딘가 돈 자랑에 그친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 아니다. 철, 쇠의 굳세고 튼튼한 힘과 기능이 더 깊은 아름다운 생각과 결합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중요한 건축적 경향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에 속하는 일일 텐데,왜 우리는 이런 상식조차 `빨리 빨리`에 밀려 제 구실을 못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빨리 지어도 그 의미와 가치가 오래 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보람이 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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