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정부에서 하라는대로 따르다보면 익숙해지겠지라는 긍정적이면서도 좀 체념적인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좀 불편하다하더라도 익숙하게 잘 써오고 있는 것을 왜 바꾸나 하는 의구심도 크다. 그렇다면 지난 수십년간 써오던 우편번호도 폐지되는 것인지, 동이름과 아파트이름을 한시적으로 맨 끝 가로안에 표시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새롭게 바꾸어버리는 것이 꼭 편리한 것인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도로명 위주의 주소 개편은 종래의 지번(地番)주소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정동과 법정동이 맞지 않는데다, 주소의 연속성이 결여되고, 특정지점을 표현하기 어려워 위치와 경로 안내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새로운 도로명 주소는 길을 찾기 쉽고, 물류비가 절감되며, 응급상황 발생시 빠른 대처가 가능한데다, 국제적 주소체계 사용으로 국가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이다.
신문지상을 보면 많은 이들이 찬반 속에 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신경을 쓰느냐? 이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그 비용이 매우 클 것이다. 우리나라 마을들은 미국 등의 것들과는 달리 무체계적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로명 중심의 주소체계가 맞지 않을뿐더러, 이미 동단위 그리고 아파트단위로 커뮤니티가 알려지고 안정화되었는데 왜 이것을 흩뜨려 놓느냐 등 반발이 많다. 찬성하는 이들은 정부가 주장하듯이 선진국에서도 모두들 도로명 주소를 이용한다는데, 익숙해지기만 하면 더 편리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주소체계를 바꿈으로 인해 외국인의 길찾기 비용, 택배업체의 배달시간과 운행비 같은 물류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효과가 연간 4조3천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이러한 발생이익(Benefit)뿐만 아니라 발생비용(Cost)에도 관심이 없을 수 없으며, 이 두 가지가 구체적으로 산출비교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본인이 10여년 거주하던 미국의 경우에는 신문지상에서 다른 분들이 언급하는바와 같이 도로명 주소로 되어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에서 네비게이션(Navigation)이 없던 시절에도 지도책 하나만 있으면 길찾고 집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오래 살았던, 더구나 메트로폴리탄 정부의 도시계획관 경력을 가지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없을 수 없다.
미국주소가 길 이름을 중심으로 번지수를 매기고는 있지만, 공식적인 주소에 이들만 포함된 것이 아니고 동네이름과 우편번호(Zip Code)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로스앤젤리스 북부에 위치한 훗힐블바드(Foothill Blvd.)는 유명하기도 하지만 매우 길어서 몇 개의 카운티와 수십개의 도시와 마을을 지나고 있다.
지도책 페이지들을 2~3분 살피다보면, 2500 West Foothill Blvd.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집을 찾는 경우는 드물고 함께 있는 마을이름과 우편번호를 함께 보면서 위치를 찾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알려진 큰길 이외의 대부분 길들은 동네사람들 이외에는 잘 모르는 게 당연하므로, 동네이름과 우편번호를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쉽게 찾아내고 확신을 가지고 방문처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시행하려하는 새로운 주소시스템에 내 자신은 조건부 찬성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동네이름과 우편번호를 같이 활용한다면 찬성. 우편번호를 지금처럼 너무 세분화하지 말고 한개 동, 경우에 따라 두세개 동이 같은 우편번호를 사용하게 하고 도로명 주소체계를 함께 사용하게 한다면 혼란도 줄이고 장기적으로도 좀 더 큰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