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퍼렇게 멍들어져 있으니
2. 길이 난 길을 그저 가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恨)이 쓰여지고 있구나
팔백리 쓰고도 다하지 못한
긴 하나의 획
굽어 휘어
내 속까지 들며
저물 녘
저물 녘
젖어
흐
르
고
인간과 함께하며 유유히 흐르는 강은 역사의 눈이다. 한시도 잠들지 않고 늘 푸르게 깨어 사람 사는 일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역사와 민중들의 희노애락을 다 지켜보아온 지리산과 섬진강.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을 간직하고 흐르는 강심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깊다. 이 땅 어느 강인들 골짝 골짝 서린 아픔들을 품고 흐르지 않는 것이 있으리오만, 섬진강은 근 현대사의 민족적 수난과 질곡을 생생히 응시해왔고, 이념으로 뜨거운 파르티잔들이 깊은 밤 가슴을 적시며 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숨어드는 것을 보아온, 아픔의 역사를 생생히 보아온 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