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반응으로는 뭔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국제정세 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생각은 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에 대한 세계와 언론의 반응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갑부의 아들이며 거액의 상속을 받아 부유한 미래가 보장 그는 왜 알 카에다가 되어 미국과 성전을 치르는 전사가 되었을까? 20대의 젊은 나이부터 54세에 사살되기까지 그는 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미국과의 싸움을 계속했을까? 미군은 자국에 있지 않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먼 나라에까지 가서 남의 나라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안가에 숨어 사는 비무장의 라덴을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정예부대가 지구의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죽인 일을 전쟁에 승리한 것처럼 환호하는 것은 상식적인가? 무슬림들은 자살테러라는 것을 하는데 그들은 자기의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그가 테러리스트라는 것이다. 그가 왜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가 부가되어 있다. 전쟁을 선포하고 정규전을 치르는 군대의 전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을 했던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아직도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폄하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이라크에서 죽어간 민간인이 9만 명이 넘는다. 그에 비하면 9·11테러에 의해 죽은 민간인은 3천명 정도다. 또한 미국이 이라크에 파병하여 죽인 사람의 수에 비하면 미군의 희생은 미미하다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비난받지 않는다.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에 즈음하여 10년 전 9·11테러에 희생된 자를 다시 회고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슬픔이 절절하다. 미국인의 죽음은 슬프지만 중동인의 죽음은 가볍다.
이런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못하다. 지구상에 테러가 없어야 하는 것처럼 전쟁도 없어야 한다. 남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세계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자국민의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지만 남의 나라 민간인의 죽음은 가볍게 여기는 것이 진정한 세계평화인가. 사람 목숨의 귀중함은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테러리스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평생을 미국과의 싸움으로 마친 한 사내의 죽음 앞에 세계는 일방적으로 환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왜 그렇게 살았는가에 대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힘이 강한 나라가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이면 모두 그렇게 믿는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의 영혼이 혹시 미국이라는 힘센 나라의 주술에 사로잡한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