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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차원 이상의 일본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12 23:37 게재일 2011-05-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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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일본은 지금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원자력 발전소 사태가 벌어지면서 중대한 역사적 시험대 위에 올려진 상태다. 이러한 일본의 재난에 대해 한국인들이 높고도 따뜻한 인류애를 발휘하여 성의껏 도움을 준 것은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알게 모르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한국은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국민통합에 바람직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문득문득 들려오는 소식, 예를 들어 무역 흑자가 몇 달째 최대치를 기록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어떤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주로 경제적인 차원에서라는 사실을 짚고 다시 한 번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는 어떨까. 일본의 스타벅스는 한국보다 약간 가격이 싼 편인데,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 방식은 우리와는 어딘가 다른 점이 있다. 목이 좋은 체인점이라 그런지 자리가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곳. 주문을 위해서 몇 사람이 줄을 서고 있는데 아무도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다음 줄을 설 생각은 하지 않는다. 늦게 들어온 사람은 줄 맨 뒤에 가 서서는 자기 주문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릴 뿐,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또한 요즘은 우리도 그런 음식점이 꽤 많아졌지만 맛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음식점 바깥에 길게 줄을 서야 하는 곳이 일본에는 많다. 도쿄에 무슨 돈까스 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런 곳도 일단 손님이 들어가 착석을 한 이상에는 점원이 빈 음식 그릇을 먼저 치우면서 자리를 빨리 비워줄 것을 종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이런 집이라면 빨리 먹고 나가달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주인과 손님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절을 착실히 지키고 있는 일본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격식을 잘 지키고 있는 데 대해서도 감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유치원 같은 곳에서 졸업식을 한다고 하자. 학부모는 대부분 정장을 하고 참석하며 행사 전체는 잘 짜여진 계획과 프로그램에 따라 유치원 선생님과 원생들과 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들은 꼭 참석해야 할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참석을 요청하고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꼭 참석을 해주는 것이 관례이며, 이렇게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꼭 답례품을 지정해 달라는 우편이 오고, 여기에 자기가 원하는 답례품을 선택해서 답신을 주면 어김없이 그것이 배달되어 온다. 정해진 예약자들만이 참석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왁자지껄 부조금이나 던지고 밥 먹고 떠나는 우리 결혼식과는 차이가 많다.

물론 우리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사람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해서 장례식도 잔칫집처럼 흥성스럽게 하는 전통이 있다. 단순하게 비교할 일만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혼상제를 이렇게 엉망으로 무성의하게 치른 적이 역사에 과연 있었던가?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성인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왜 졸업식장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데, 우리는 태어나는 사람을 맞이하는 일도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일도 무슨 아파트 단지 건물 짓듯이 대규모로, 날림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한국인들의 종교의식은 또 어떤가. 종교가 속물적인 기복적 성격에서 아예 벗어난 적은 동서고금에 없겠지만, 지금의 우리 기독교, 불교처럼 나 잘 살게 해주십사 빌고, 노골적으로 돈에 따라 움직이고, 종교 기관을 정치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마구잡이로 이용해 먹는 곳이 있는가?

필자는 지금 우리가 현대적 발전의 중요한 국면에 들어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발전이란 과연 단순히 경제적인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 결코 경제적인, 물질적인 차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다. 삶을 이해하는 총체적인 인식 방법을 깊이 수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지금의 발전 단계의 관건적 사항이다.

필자는 지금 시련을 겪으면서 시험대 위에 올라서 있는 일본은 새로운 눈으로 다시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들은 경제적 경쟁자나 비교 대상 이상의 존재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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