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터를 보십시오. 청사초롱은 예부터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청사초롱을 마치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것은 G20 대회를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가의 번영을 이루겠다는 우리 국민들,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피고 박정수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한 것입니다. 이런 피고인 박정수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합니다. 함께 범행을 모의하고 현장 부근에서 박정수와 연락을 취했던 피고 아무개에게는 징역 8개월을 구형합니다….
그러나 검사님이 중죄인처럼 다룬 이 사건은 G20 정상회담 포스터에 한 그라피티 작가가 쥐 그림을 그려 넣은, 웃자고 한 가벼운 예술행위였다.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는 권력에 대한 풍자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체포된 일도 재판을 받은 적도 없다. 물론 공공 설치물에 덧칠을 하는 것은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뱅크시는 잡히지 않았다. 뱅크시를 잡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며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국검사와 우리 검사의 다른 점이 이것이다.
지난 미네르바 사건 때도 검사님들은 법치주의를 내세웠다. 그분들의 법치주의는 미네르바를 구속하기 위해 잠자는 전기통신법을 찾는 일이었다. 법치주의가 그런 것이라면 주차장이 아닌 곳에 주차한 모든 차량에 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단속이 목적이 아니라 교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검사님이 엄숙한 표정으로 징역 10월을 구형하는 법정의 풍경을 떠올리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검사가 되려면 공부도 많이 하였을 터인데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은 그라피티 작업을 보고 신고한 시민의 수준을 넘지 못 해 보인다.
옛날 어떤 고을에 소가 호랑이를 잡은 일이 있었다. 부잣집 소와 가난한집 소를 뒷산에 매어 두었는데 그 자라에 호랑이가 죽어 있고 소 두 마리는 고삐가 풀려 있었다. 소 임자들이 서로 자기네 소가 호랑이를 잡았다고 다투어 송사를 하게 되었다. 원님은 소의 뿔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잣집 소는 뿔이 날카롭고 가난한집 소는 뿔이 둥글게 굽었으니 호랑이는 부잣집 소가 잡은 것이라 판단했다. 이 송사를 보던 아이들이 웃었다. 원님은 화가 나서 너희들이 판결을 해 보라 했다. 아이들은 호랑이를 가져오라 하고 소 두 마라를 데려오라 했다. 고삐를 푸니 부잣집 소는 호랑이를 보자 달아나고 가난한집 소는 호랑이에 달려들었다. 원님의 눈은 선입견이나 자기의 이득에 가려져 있지만, 아이들의 눈은 순수해서 진실을 바로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법관은 모름지기 아이들과 같은 때 묻지 않은 맑은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검찰이 무리하게 법을 끌어들여 기소한 사건들이 계속 무죄 판결이 나고 있다. 그래서 생긴 말이 `검사스럽다`이다. 그런 검사님들이 오히려 좋은 자리로 영전했다. 지금 국회에서는 사법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제도를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우리의 검사님들이 검사스럽다는 말을 듣는 상황에서는 모두 허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