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저소득층(BOP: Bottom of Economic Pyramid)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BOP는 연간 총소득이 3천달러 미만인 계층으로, 전 세계 인구의 72%인 40억명이 이에 해당한다. 비록 개인의 소득 수준이 낮아 소량 단위, 낮은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지만, 인구 수가 많다 보니 시장 규모는 4억 9천만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기업이 현지 투자를 통해 고용을 창출한다면, 소득 증가로 인한 소비 유발 효과까지 합해져 매출은 더 확대될 수 있다.
결국 BOP 비즈니스는 단기적인 이윤 창출은 물론이고 기업의 시장수요를 BOP에서 중산층으로 확대해 중장기적인 매출 증대까지 이끄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BOP 시장은 중상류층 시장과는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업들이기존 마케팅 룰을 버리지 않고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일단 중상류층 소비시장에서 기업활동을 지원해주는 대중매체, 물류서비스 등이 BOP 시장에서는 갖춰져 있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BOP 계층이라 하더라도 빈곤 상위층, 빈곤 중위층, 빈곤 하위층의 비율이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40억명을 하나의 균질한 소비집단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BOP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이다. 최소한의 품질과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저소득층의 구매력에 접근하려면 모든 생산단계에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인도의 출산 전문 병원인 LifeSpring은 일반적인 병원 서비스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경제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성공했다. 구내 매점도 없애고 약국과 실험실도 외주에 맡겼다. 이 병원의 출산 건수는 비슷한 규모를 가진 개인병원의 5배에 달한다.
소비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BOP 계층을 유통과 생산에도 참여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은 소비자이면서 낮은 임금의 엄청난 양의 노동력 공급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려면 기업 안에서도 혁신과 체질 개선이 일어나야한다.
첫째, 네트워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BOP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크지만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하고 위험도 커 중장기적인 접근 방법을 취해야 하는데, 국제 원조기관이나 정부의 기업 지원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유연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의 가격을 낮춰 판매하겠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BOP 계층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저가이면서도 중간 이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제품 영역의 집중 공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매력이 약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제품의 생산, 유통, 판매의 모든 가치사슬에 혁신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지의 문화, 기후 등에서 비롯된 특별한 욕구를 파악해내야 한다.
BOP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모델은 수익성이 낮고 고객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고차원의 기술을 요구하지도 않아 고수익 구조에 의존하는 기업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열악한 시장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기존 중상류층 주류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은 BOP 시장 진출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