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달력에는 기독교의 가장 큰 기쁨이라 할 부활절이 있고, 5월 달력에는 불교의 경축일인 석가탄신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기독교와 불교는 한국이라는 공간의 문을 넓히는데 분명히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두 종교는 한국의 정치인과 경제인이 하지 못할 일을 해왔음에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특히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아픈 이웃을 어루만져 주는 일을 놓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잊지 않고 소명으로 이어 간다.
이따금 두 종교간의 갈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가 있다. 특히 권력과 밀접한 곳에서 파생된 문제는 종교를 벗어나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때도 있다. 교리에 따른 기도나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상호간에 충돌로 발생될 때는 아무래도 우려되고 걱정스럽다. 이미 우리는 발칸반도의 코소보를 비롯하며 많은 나라에서 종교 문제로 내분이 발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피비린내 풍겼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종종 일부 종교의 지도자들의 편협한 인식이 상대 종교에 대해 적대적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가 있다.
작은 예를 하나 들어본다. 몇 년 전이었다. 중고등학교 학생과 단체로 경주 문화 유적을 답사하는데 몇 학생이 불국사에 입장하지 않고 차에 머물겠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은 기독교 신자인데 절은 사탄의 영역이라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행하던 나로서는 그 학생을 설득할 만한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렸던 적이 있다. 어떤 교리를 배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성인의 나이가 되었을 지금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분명 그 학생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문제라며 그냥 넘길 수도 있다. 특히 그런 종교 지도자들일수록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문을 걸어둔다.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 불교의 자비는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문(門) 없는 용어일 것이다.
인터넷 사전에서 자비를 검색해 보면 `자(慈)는 사랑의 마음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하는데, 진실한 우정을 뜻한다. 비(悲)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공감, 동정, 연민, 함께 슬퍼함 등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로서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의 정신을 강조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라고 써 있다.
분명 이질적 종교지만 가르침의 안을 들여다보면 같다. 종교의 이름도 다르고, 기도 방법도 다르지만 인간을 향한 끝없는 사랑과 자비는 두 종교의 가장 굵은 대들보로서 시공을 초월해 그 종교를 받치고 있다.
4월과 5월, 좋은 봄날이 간다. 핍박받고 돌아가신 예수의 부활이 축복의 구원 사업이고, 부활의 기쁨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기원하는 그 맘에는 불교의 자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또한 석가모니 탄신을 봉축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에는 기독교의 이웃 사랑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인간의 구원과 깨달음을 생각하게 하는 두 종교의 대명절을 보내고 맞으며 종교의 문(門)을 생각해 본다. 인간에게 열려 있는 문은 분명 종교간에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그 열린 문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인간의 앞날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