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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풍경 몇 점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4-28 23:50 게재일 2011-04-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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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2004년도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를 방문했던 것 같다. 미국 서부의 최고 명문 대학이다. 버클리 대학 캠퍼스는 유서 깊은 장중함을 가지고 있었고 샌프란시스코 자연과 도시 경관도 더할 바 없이 평화로워 보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 미국을 드나드는 일은 아주 까다로웠다. 9·11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탓인지 공항 입국 절차는 끔찍할 만큼 거칠었다. 까다롭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공항 담당자들이 입국자들을 다루는 방식은 마치 예비 죄수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로스앤젤레스를 통해서 미국으로 들어갔다. 이번 국제비교한국학회 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을 해 주신 김우창 선생 말씀에 따르면 미국은 올 때마다 상황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따로 불러서 까다롭게 묻는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했다. 필자가 경험한 공항 입국 절차는 지문 검색 같은 것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몇 년 전 경험을 무색케 할 만큼 부드럽고 친절해졌다. 줄을 세우는 사람들의 태도도 눈에 띄게 부드러웠고, 공항 교통 관계를 안내해 주는 여성은 길을 모르는 여행자가 택시를 잡을 수 있는 곳까지 데려가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USC에서 있었던 국제비교한국학회의 학술대회는 한국학에 뛰어든 젊은 미국 교수들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2004년과 달리 한국학을 전공하는 젊은 교수들의 한국학 실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평가할 만했다. 그들의 존재는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차 그들이 경력 갖춘 학자들이 된다면 한국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더 새롭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었다.

미국은 평화로운가. 미국 드라마에서는 매일 같이 사람이 죽고 총격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나다니기조차 힘든 곳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필자가 몇 년 전 버클리에 갔을 때도 인근 지역인 오클랜드에서 한국 사람이 흑인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해지면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흑인 거주 지역에는 절대로 가지 않는 게 좋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본 로스앤젤레스의 밤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코리안 타운은 북적북적 젊은이들의 즐거움이 있고 낮은 낮대로 차이나타운, 리틀 도쿄, 올베라 거리, 산타모니카 해변 다 아무 일 없었다. 이 모든 풍경들은 미국은 지금 안녕하다는 표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몇 년 전 시작된 미국발 경제 위기의 영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것은 무엇보다 주립대학들에 대한 지원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모자라는 돈은 결국 학생들 주머니에서 거둘 수밖에 없다. 명문대학 중 하나인 UCLA의 등록금은 최근 매학기마다 높아져 지금은 한 해 등록금이 한국돈 4천만원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정확한 액수는 잊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나 캘리포니아의 외부에서 들어오는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학비가 입을 딱 벌리게 할 정도라는 사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미국 물가가 한국보다 싸 보인다는 점. 이것은 물질적 풍요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다운타운의 비싼 곳들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의 경제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전반적으로 활력이 떨어져 보였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관광객도 적은 편. 오로지 북적이는 곳은 코리안 타운뿐인데, 요즘 한국 경제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코리안 타운이 점점 더 화려해 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밤 문화가 역수출된 까닭에 새벽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찾는 미국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도 한다고 했다. 반면에 다운타운은 우리들이 묵은 호텔 바조차 너무나 한산해 보였다.

필자가 그곳에 가 있는 동안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다는 소식이 들여왔던 것도 같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경제에만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의 여유, 평화, 이런 것들이 사뭇 좋게 느껴진 여행이었다. 미국의 국력은 지금 최전성기를 지나 어떤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지 모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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