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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거대노조의 `세습 연대`인가?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4-25 21:35 게재일 2011-04-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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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아시아`발행인
무릇 생명은 고유 유전자를 타고나서 2세에게 물려준다. 이것이 종족 번식의 자연 법칙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마찬가지다. 요새는 흔히 그것을 DNA라 부른다.

인간의 유기적 결합체인 기업 조직도 DNA를 강조한다. `우리 회사 고유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 회사 고유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 전통과 문화가 우리 회사의 DNA가 되어야 한다.` 이런 화법에 DNA를 동원한다.

과연 인간의 DNA에는 선과 악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자비와 탐욕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이것은 내가 풀지 못하는 궁금증이다. 생명과학이든 생명공학이든 과학기술자들은 나와 다른 종류의 의문을 품는 모양이다. 그들은 DNA 연구를 통해 주로 인간의 육체적 건강을 지켜낼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으며, 그것은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경제적 영역과 직결되어 있다.

어떡하면 인간이 타인을 지배하고 약탈하는 짓거리를 청산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풀겠다고 덤비는 것은 불가능한 미몽에 빠져 허우적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메시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빽빽한 증언이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작가는 인간과 역사에 대하여 절망할 수 있다.

십여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폭력의 핏물에 흠뻑 젖은 인간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DNA와 연결시킨 적이 있었다. 이것이 2004년 책으로 나온 장편소설 `붉은 고래`의 한 장면으로 등장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혼자서 CNN-TV에 등장한 어떤 저명한 DNA연구자(과학자)의 연설을 경청하는데, 그에게는 환각이요 환청이지만, 물론 작가가 세계를 향해 외치는 시니컬한 목소리다.

“정부여, 금융업자여, 대기업이여, 만국의 노동자여. 여러분이 진정으로 평화와 평등과 자유의 유토피아를 갈구하고 있다면, 모두가 합심하고 단결하여 아낌없이 유전공학에 투자하라. 그러면 우리가 인간의 유전자를 철저히 해부하여 `전쟁과 살육과 지배를 통해서만 삶의 진정한 매력과 의미를 느끼게 만드는 유전자`를 기필코 찾아낼 것이며, 그날 우리는 인류 평화와 평등과 자유의 이름으로 모든 인간에게서 그 유전자를 하나 남김없이 완벽하게 제거할 것이다. 그 지점에 이르러 과학은 명실상부하게 진정으로 신(神)보다 위대해진다. 신이 인간에게 경전을 선물했지만 인간은 한 번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반면, 과학은 악의 근원과 같은 그 유전자 제거를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이 지구에 인간이란 종이 생긴 이래 최초로 완벽한 평화와 평등과 자유를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에 나오는 `경전`이란 석가모니, 그리스도, 공자 같은 성현의 `말씀`이다. 수고스럽게 인간의 세상을 살았던 그분들의 말씀은 결국 자아를 열심히 수양하고 타인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그분들의 말씀을 보기 좋게 거스른 기록으로 넘쳐난다. 교회와 사찰이 너무 많다는 우려의 여론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한국사회만 보아도 그분들의 말씀을 거스르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대체 인간이 2세에게 DNA를 물려준다는 것도 세습이란 말인가? DNA를 세습해야 하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니 권력도 재산도 당연히 세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가장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대답을 보내는 곳은 평양이다. 3대 세습체제를 굳혀간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과는 아주 다른 경우지만, 세습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세습이 한국사회에는 많다. 미국, 유럽, 일본과 달리 한국의 거의 모든 대기업은 벌써 3대 세습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을 위시한 거대 노조가 직업의 세습체제를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대기업(재벌)의 경영권(소유권) 세습과 거대 노조의 직업권 세습이 착착 맞물리고 있으니 마치 서로가 `세습 연대`를 전략적으로 펼치는 듯한 형국이다. 또 웃기게, 성직자의 세습마저 가세한다. 정말이지 세습 이기주의 욕망의 DNA도 손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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