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것은 노인네들의 TV 시청 행태이다. 요즘 유행하는 케이블TV의 서바이벌 게임 슈스케2나 오페라 스타 같은 뮤직 전문 채널을 시청하는 것도 아니요, 이승엽 박찬호가 나오는 일본프로야구나 최나연 유소연 등 골퍼들이 펼치는 LPGA 경기를 중계하는 스포츠 전문 채널을 보는 것도 아니다. TV 시청이라야 고작 지상파 TV의 저녁 뉴스나 주말 연속극 정도다. 그런데도 유선방송을 가입해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렇지 않으면 TV가 안 나온다”는 대답이었다.
대구시 동구 신천동 한 사무실의 김씨는 매달 전기요금에 덧붙어 나오는 TV 수신료 외에 유선방송 수신료를 따로 내고 있다. 김씨는 “이사 올 때부터 전에 있던 사람이 이용하던 유선방송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며 “건물주에게 물어보니 유선방송을 들면 되는데 웬 안테나타령이냐고 핀잔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TV 수신료 외에도 유선방송 사용료로 월 7천여원을 내고 있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냥 TV 수신료를 내면서도 또 유선방송에 가입해서 유선방송 수신료를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빌딩도, 아파트도 이젠 안테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명백한 이중 수신료 징수다. 수신료는 TV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TV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신료는 내야 하는 준조세다. 전국적으로 1천800만대 이상, 5천억원 이상이 수신료로 거둬진다. 그중에는 몰라서 또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4월 안에 TV 수신료를 2천500원에서 3천500원으로 40%나 인상하겠다던 KBS의 기세가 꺾였다. 김인규 KBS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수신료 인상을 자신했으나 시간문제일 것 같던 국회 승인이 문턱도 못 넘었다. 하긴 30년 전인 1981년부터 받아오던 수신료를 이제야 인상하겠다니 그 인내심에 존경이 간다. 그러나 TV 수신료를 인상하겠다고 나서기만 하면 전국 곳곳에서 벌떼처럼 일어나는 반 KBS 정서를 도무지 이겨낼 재간이 없다는 현실을 알고 보면 이해가 간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그 재원을 시청료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공영방송이 제 노릇을 하고 못하고 특정인이나 특정 정권의 들러리 노릇만 한다는, 무엇보다 공영이 부끄러운 공정성에서 수신료 인상에 제동이 걸렸던 것이다. 거기에다 수익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까지 챙기면서도 수신료를 올리겠다니, 국민 정서상 반대 여론이 식지 않는 것이다.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 공익성을 구축해서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TV 수신료는 “텔레비전 방송을 수신하기 위하여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납부하여야 한다”는 방송법 제64조에 근거한다. 임직원만도 5천명이 넘고 연간 예산만도 1조원을 훌쩍 넘는 공룡 KBS는 법적으로 국가기간 방송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방송 수신료로 그 역할을 수행할 재원을 충당한다고 큰소리친다. KBS는 국가재난방송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지진 쓰나미같은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TV를 수신할 수 있도록 챙겨주는 것이 수신료 인상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아닐까. 이제 곧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리는데 TV수신료만으로도 국가기간 방송만은 시청할 수 있도록 총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도 좋겠다. 그것이 한 달 2천500원, 1년 3만원씩을 흔쾌히 지불하면서도 착하거나 모르거나 귀찮아서 불평 한마디 않는 국민들을 위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