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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륀쥐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4-21 23:21 게재일 2011-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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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창 / 한국작가회의경북지회장
지난 석 달 동안 카이스트의 젊은이 4명이 스스로 꽃잎처럼 떨어진 비극이 있었다. 비극의 요인 가운데 차등수업료 제도와 더불어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정부가 출발할 무렵에 들었던 어휘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영어 몰입교육을 해야 한다. 모든 교과목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이다. 그리고 티브이에 나와서 미국에서 `오렌지`라고 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아륀쥐`라고 해야 한다며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시던 장관 물망에 올랐던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것이 코미디가 아니라 비극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이대로 좋은가?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서 생각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머릿속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어떤 언어로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의식구조가 결정된다고 언어학자들은 말한다. 영어를 사용하면 미국인이나 영국인과 같은 의식구조를 갖게 될 것이고 한국어를 사용하면 한국인의 의식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식민지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의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한 일이었다.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당시는 국어학자가 곧 민족주의자였다. 국어를 지키기 위해서 감옥에서 죽어간 분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은 너무 참담하다. 안중근 의사도 `내가 불어를 배우면 불란서의 종이 될 것이고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의 종이 될 것이다. 오늘부터 외국어 베우기를 폐하노라`고 했다. 국어는 우리의 얼이다. 그러함에도 영어몰입교육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 현실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국어를 모국어라고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운 생각의 뿌리가 되는 말이다. 가장 깊이 있는 생각은 모국어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일지라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거나 섬세한 정서를 드러내는 일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오래 살아서 우리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외국인도 가끔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에 미치지는 못한다. 우리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학문을 하기에 적절하지 못하다. 대학의 모든 교과목은 그야말로 높은 차원의 사고의 결과물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학문을 한다는 것은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강의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한국사도 영어로 강의해야 한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 대학에서의 외국어는 학문의 보조수단에 그쳐야 한다.

언어는 국력이다. 영어는 우수한 언어라고 볼 수 없는 언어였다. 그러던 영어가 세계적으로 강한 언어가 된 것은 셰익스피어 같은 우수한 작가가 있어 영어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지금 지구상에는 힘이 약한 많은 언어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어의 운명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아직 1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어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와 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러면 영어교육 하지 말자는 것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영어교육이든 외국어 교육이든 필요하다. 문화 또는 학문은 외국과 교류하면서 서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학까지 영어로 공부해한다면 손님과 나그네가 바뀌었다 할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지금 우리의 영어몰입교육은 미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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