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는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학교로 통하는 거리를 커피 전문점에 앉아 책도 읽고 글이라고 쓸 요량으로 무심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가로수 옆에 웬 자전거가 하나 자물쇠가 채워진 채 서 있다. 그런데 이 자전거에 비닐로 싸놓은 웬 종이판이 하나 매여 있다. 신촌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통하는 공간의 삶의 모습에 관심이 많은 나는 뭔가 적혀 있는 이 종이판에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이 가로수 바로 옆의 건물주를 탄핵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계약 후 1년만에 건물주가 보증금을 5천만원을 올려달라고 해서 그후 1년 10개월 후에 시설비와 권리금을 몽땅 빼앗기고 폐업했다는 것이며 행여라도 이렇게 자기 같이 전 재산을 빼앗기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사치스럽고 세련된 거리들 사이에서도 뜻밖에 이런 불행한 모습들을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필자가 돌아다니는 신촌 로터리나 홍대 입구 쪽은 한국에서도 가장 첨단적인 유행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화려하고 온갖 종류의 가게들이 단장을 하고 있으며 서양사람이나 중국사람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며 한국 풍물을 즐겁게 구경하곤 한다. 그런데 이 거리를 가만히 쳐다보면 놀라운 대조의 국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한 쪽에는 가장 첨단적인 가게, 건물, 거리가 있는데 그 바로 옆에는 가장 뒤떨어진 가게, 건물, 거리가 진을 치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장 세련된 옷차림, 화장을 한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고물을 주으러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 나는 이런 풍경에서 우리 사회의 축도를 본다.
한국 사회는 지금 모든 곳에서 첨단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첨단 빌딩들, 첨단 스마트폰들, 첨단 백화점들…. 그러나 그 옆에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풍경들이 뒤쳐진 채 남겨져 있다. 이 풍경은 너무 황폐해서 안쓰러울 정도다. 신촌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통하는 동교동 로터리 부근에는 인천공항으로 통하는 전철 역사가 새로 준공되었다. 그러나 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역사 주변은 아직 채 변신을 마치지 못했다. 공사중임을 알리는 철책들, 먼지들, 트럭들, 낡은 집들, 쓰레기들…… 언제 이 모든 게 끝나고 깨끗하고 정리된 풍경을 가지게 될까. 그러나 이런 풍경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또 많은 사람들을 도시 외곽으로 쫓아내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 그런 것 아니냐. 그럼 언제까지 그런 풍경들 끌어안고 살아야 한단 말이냐. 그래도 결국은 다들 어떤 형태로든 잘 살게 되지 않겠느냐. 이런 반문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 풍경들을 보면서 이런 반문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불교 경전인 `법화경` 중에 `약초유품`이라는 장이 있다. 삼천대천세계에 내리는 비는 풀과 나무를 가리지 않고 고루 내린다는 것이다. 이 비는 무엇을 비유한 것이냐. 원래 약초유품의 `유`는 비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비를 사랑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아니, 굳이 바꾼 것이라 할 수도 없다. 부처의 가르침의 근본이 바로 자비, 사랑이기 때문이다. 목마른 생명들을 적셔 주는 비는 이 세상 모든 곳에 고루 뿌려져야 한다.
경쟁 만능의 세상이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쟁 원리가 필요하고 도태되는 소수까지 배려할 여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메마른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런 유행 풍조를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