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거짓말은 총체적 국정난맥을 빚고 있다. 국책사업을 놓고 이랬다 저랬다하는 바람에 국론이 사분오열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원칙에 따라 이를 수습하지 않는다면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국익에 되돌리기 어려운 엄청난 손실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 뜻에서 이제 남은 국책사업 현안 중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만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미 영남권에서는 경북, 울산, 대구를 잇는 연구소, 학교, 기업들이 이같은 국책사업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는 뜻을 정부에 건의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입지선정을 무산시킨 직후 이 사업의 입지선정을 위한 과학벨트특별법에 따라 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에 앞서 대통령이 상반기 중으로 이를 결정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렇게 법절차에 따라 순리적으로 진행되면서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결과를 내놓는다면 설사 탈락으로 섭섭한 지역이 생기더라도 참고 승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과학벨트의 경우도 지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때처럼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가 상식을 벗어난 혼란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아직 관련법에 따른 절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지역에 무엇을 어떻게 나눠 준다느니 하는 말이 관련 기관에서 흘러나오고 이를 두고 정치권이 목숨을 건 투쟁이라도 벌일 듯 막말과 거친 언어를 여과 없이 토해내는 등 난장판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것은 여권을 비롯한 정치권 일부와 서울 지역의 언론에서는 벨트란 명칭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중심기능을 충청권에서 가져가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논의하는 점이다. 물론 이 사업이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에 공약한 것이긴 하지만 세종시 문제와 함께 이미 백지화를 선언했고 그에 따른 특별법까지 마련됐다면 이전에야 어떻게 추진되었든 새로운 입법 취지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 정당하다. 따라서 영남권의 과학벨트 신청도 충청권과 차별화됨이 없이 같은 자격으로 심사되어야 마땅하다. 하기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경험을 가진 영남인들은 충청인들의 억울한 심사를 십분 이해한다. 그래도 충청인들은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로 선정 추진되는 것만 해도 영남권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과학벨트 사업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기초과학 수준을 올려 원천기술을 선진국에 뒤지지 않게 확보하려는 데 있는 만큼 최적지를 선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충청권에는 대덕단지, KIST 등이 있지만 영남권에도 그에 못잖은 포스텍, 막스프랑크 연구소 등을 비롯한 많은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우수한 인력과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오늘을 있게 한 구미, 포항, 울산 등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어 과학과 비즈니스가 이상적으로 접목된 세계적 벨트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을 배치한다면 영남의 과학벨트는 무한한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고 향후 백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역할을 충분히 해 낼 것이다.
더욱이 대구는 지난 16년간 1인당 지역내소득이 전국 꼴찌고 충남은 현재 전국 2위인데 세종시에 이어 공정한 심사 없이 과학벨트마저 충남이 가져간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수도권의 경계가 충남으로까지 남하할 것임이 분명하고 영호남은 갈수록 낙후되고 말 것이다. 수도권 공화국의 비대는 날이 갈수록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과학벨트선정을 두고 또 정치권이 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국가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법에 따른 엄정한 심사를 통해 공정한 결정을 내려야 더 이상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않을 것이다. 정략적 결정으로 영남인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