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청이 신청사로 이주한 뒤, 내가 속한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는 <포항연구> 통권 제39호를 통해 `도심 공동화(空洞化)의 전략적 해법`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다. 어시장을 제외한 죽도시장이 대형 마트들에 휘둘리고, 동빈내항은 썩을 대로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백화점에 손님을 빼앗긴 중앙상가가 속절없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시청마저 떠나버려 공동화의 한복판에 휩쓸린 옛 도심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그때 제시한 대안은 `옛 시청 부지와 현 중앙초등학교 부지에 종합문화센터를 세워서 행정중심이었던 동네를 문화중심으로 변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예산이 뒤를 받쳐줘야 하고 그만큼 시간이 요구되지만, 그 예산과 그 시간을 이끄는 힘은 전략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옛 시청의 낡은 건물에는 우선 `포은도서관`이 들어앉았다. 예산과 시간을 기다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는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시청이 신청사로 옮긴 지도 어느덧 4년을 넘어섰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하는 이때, 포항시가 `포항 중앙도서관 건립`을 위한 행정적 실무의 닻을 올렸다.
올해 6월 건축 설계공모를 거쳐 내년 5월에 착공하고 2013년 10월에 준공해 12월 개관하겠다는 포항 중앙도서관은 총 24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상 5층, 지하 1층으로 세울 계획이다. 그 안에 열람실, 디지털도서실, 시청각실, 종합자료실, 점자열람실 등이 들어가게 된다. 드디어 포항에도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탄생할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저 도서관다운 도서관`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도서관`을 세울 것인가? 박승호 포항시장과 시의회 의원들, 포항시민은 먼저 그것부터 결정해야 한다. 도서관에 관한 한 포항시는 꼴찌쯤에 위치한 후발 주자다. 그런데 후발 주자는 선두 그룹이 갖지 못한 굉장한 강점을 갖는다. 그것은 같은 일이어도 앞에서 해놓은 것들이 상상도 못했던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고속도로의 공중화장실이 유럽의 그것보다 앞선 것은 하나의 본보기다. 여기서 포항시립미술관의 경험을 돌아봐야 한다. 그때 나는 주장했다. “이왕에 늦은 일인데, 건물 외형만으로도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벤치마킹하자. 그래서 포항은 철의 도시니까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스틸하우스 미술관을 세우자. 위치는 되살려야할 동빈내항과 연계하자” 그러나 현재의 미술관으로 태어났고, 그나마 포항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세상사는 빛과 그림자다.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내재한다. 떠난 시청 자리에 훌륭한 도서관이 들어서고 중앙초등학교 자리에 아름다운 미술관이 들어섰다면, 도심 공동화에 내몰린 그 동네는 포항의 행정중심에서 한국의 문화중심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포항시는 후발 도서관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서 건물부터 기존 도서관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적 명품 건물`로 구상해야 하며, 학생 수가 급감한 중앙초등학교를 이전하고 미술관에 버금갈 문화예술 인프라를 앉혀야 한다. 중앙초등 동창회에서 학교 이전에 반대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것은 포항의 미래를 외면한 소아적 욕심에 불과하다. 포항고등학교도 대신동에서 학산동으로 옮겼다. 학교 이름만 영원하면 동창회도 영원하다. 만약 포항시가 그 터전에 문화예술 인프라를 앉혀서 행정중심이었던 곳을 문화중심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경우에도 동창회가 반대한다면, 그때는 정장식 전 포항시장 같은 동창회원이 앞장서서 그들을 설득해야 옳다. 육거리 일대가 공동화의 서글픈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명성과 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행정중심에서 문화중심으로의 변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