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 자듯 깨어나 꿈결 속에서 들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선 곳에 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몰려 왔네 맑은 날은 새벽 참을 먹었네 시큼거리는 김장 김치 송송 썰어 넣고, 먹다 남은 식은 밥 넣어서 끓여낸 국도 밥도 아닌 밥국으로 새벽을 열었던 아버지, 개 짖는 소리 컹컹 밟고 물 보러 갔네 고래 뱃속 같은 터널 지나 세상 끝, 방파제에 서면 쌀뜨물 흘리듯 아침은 그렇게 오고 있었네 바다신발 갈아 신고 물 보러 가던 아버지의 아침은 시작되곤 했네
시오리 바닷길, 학교 가는 길에 아버지와 마주 치곤했던 그는 이제 카피라이터가 되어 아버지의 바다를 그렇게 꿈인 듯, 현실인 듯 걸어가고 있네
시동인지`푸른시`(심지, 2006)
나는 김동헌의 시 `아버지의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로 시작되는 초창기 SK텔레콤 휴대전화 광고 문구를 만든 카피라이터 김동헌 시인. 그는 커피가 좋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아버지의 바다(포항)를 떠나 서울 강남구 신사동으로 떠났지만 끝내 “잠든 대벌리 깨우셨던 아버지의 바다”로 되돌아 왔다. “먹다 남은 식은 밥 넣어서 끓여낸 국도 밥도 아닌 밥국으로 새벽을 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열었던 새벽 아침이 바로 아버지의 바다요 마당이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마당의 힘으로 학교로 가 공부하고 세상으로 걸어나가 직장을 얻고 여자를 얻어 아이를 낳고 또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바다와 마당, 그 큰 넓이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바다신발 갈아 신고 물 보러 가던” 시인의 아버지가 이제는 연로하셔서 아침 바다를 쉽게 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바다는 이미 아버지의 대(代)를 이은 김동헌이라는 아비가 또 바다를 펀하게 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당이 환히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