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사람은 말을 고안했다. 혼자 가두어둘 수 없는 생각을 여러 사람이 공유함으로써 기억의 소실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말 역시 시공의 제한을 심하게 받았다. 결국 글이 필요하게 되었다. 글은 우리의 기억을 고정하는 기능이 훨씬 강하고 확고했다. 넓은 공간과 오랜 시간을 극복하고, 글은 우리의 생각을 확정하고 전달했다.
그러다보니 글은 광범한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기억을 보관하는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고, 내 생각과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기능까지 가지게 되었다. 종이와 붓의 별칭인 저생(楮生)과 모영(毛潁)은 지식과 주장의 도구로 쓰였다. 그런데 이 설득이 지나치면서, 글로 남을 판단하고 저주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붓을 필봉(筆鋒)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글로 남을 공격하는 일을 필주(筆誅)라고 이르기도 했다. 주(誅)는 주륙(誅戮)한다는 뜻으로, 잔인하게 죽이는 형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나 글의 내용이 시사(時事)에 미치면 날카로워진다. 특히 남이 보라고 신문에 쓰는 글은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드러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스스로 조심할 일이다. 요사이 신문에 쓰인 글들이 많이들 흥분한 것을 본다.
이 난에 쓰인 글들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신문은 공기(公器)이다. 홀로 편협하게 생각한 것을 남에게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 생각만 있을 뿐, 근거없고 논리없이 남의 생각을 비방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긴장시킨다.
/可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