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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힘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9-22 22:30 게재일 2009-09-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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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로타리 코리아 부위원장객원 논설위원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시 움직이고 있다. 한 때는 준미국인이 아닌가 했었는데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향을 바꾸는 것 같다. 하토야마 유키오 새 총리의 아시아로 방향전환은 대동아(大東亞)공영시장 공략이 침몰하는 일본 경제를 건질 최선의 방안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처럼 이익만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일본의 힘이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아리따운 소녀가 가슴에 총을 품은 섬뜩한 인형을 자주 보게 된다. 인형의 실제 주인공은 16살의`와카사(若狹)`다. 와카사 인형이 오랜 세월 변함없이 일본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섬뜩하다.


1543년 8월25일 일본의 서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 난파선이 닿았다. 당시 이 섬의 영주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갖고 있었던 화승총의 위력에 반해 총의 무게와 같은 양의 은(銀)을 주고 화승총을 샀다. 영주는 대장간에 넘겨 똑같은 화승총을 만들 것을 명령했다.


대장장이가 만든 총은 무사들이 쏘다 어깨를 다치기가 일쑤였지만 선장은 그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그는 대장장이의 딸 `와카사`를 탐했다.


이를 눈치 챈 `와카사`는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몸을 바치고 밤마다 열심히 포르투갈어를 배워 그 비법을 알아냈다. 암나사를 만들어 총신 뒤를 단단히 받치니 머리 판이 뒤로 튀는 일이 없어졌다.


이것이 일본이 조총을 만들게 된 경위가 되었다. 조총은 그로부터 49년 뒤 조선 강토를 처참하게 유린한 뼈아픈 역사(임진왜란)의 산물이 됐다.


일본 육상은 현재 20년 동안 깊은 동면에 빠져 있는 한국과는 달리 아프리카에서 100여명을 자국에 데리고 와 국내 선수들과 함께 뛰게 해 경쟁을 시키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남자 마라톤 우승자인 사무엘 완지루(케냐)도 고교시절부터 일본에서 활동한 선수다. 일본은 아프리카 육상선수를 수입한 결과 아시아 육상을 휩쓸고 있으며 이번 베를린 선수권에서는 여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얻었다.


한국은 현재 육상의 꽃인 100m 경우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34를 30년째 깨지 못하고 있으니 2년 앞으로 다가온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걱정이다.


우리는 거주 5년이 지나야 국적을 얻을 수 있고 귀화 3년 후에나 국제대회 출전자격을 주는 세계육상연맹 규정으로 인해 당장 뛸 수가 없다.


이와는 달리 일본은 와카사 시절이나 지금이나 개방적이다. 일본의 한류 역사를 보면 지난 2002년 NHK의 외화 담당 PD가 드라마 편성으로는 황금시간대였던 밤 11시에 겨울연가(일본명, 겨울소나타)를 파격적으로 편성, 대히트시켰다. 이것이 한류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로는 파격적 편성이 됐던 이 시간의 TV 주 시청 층은 남편과 자식을 기다리며 안방을 지키는 일본 주부들, 이들의 정신적 허기를 한국의 순애보로 폭발시켰다고 보면 된다. 순수했던 처녀 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소녀처럼 감각기관을 폭발시켜준 드라마다.


일본은 자기에게 유리하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게 힘이고 문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가 열리고 우리 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퍼뜨린 것이 당시 조선사회가 그렇게 천시했던 광대나 딴따라다. 이들 조선의 천민 백성이 그림과 소리, 춤을 전달했다.


일본은 동양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바닷길을 통해서는 사람을 제압하는 무기를 받아들였다.


경쟁은 선수를 강하게 만든다. 이 원칙은 사회에도 꼭 같이 통한다. 스포츠 든 사회생활이든 글로벌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는 순혈주의는 필요 없다.


이제 일본의 새 정부는 아시아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들이 스스로 포기한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향해 순식간에 방향전환을 하는 그들의 속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겐 무척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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