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으로 황(皇)은 하늘을 대신하여 제후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개념으로 쓰였다. 일본은 거기에다 하늘이라는 천(天)자를 앞에다 붙였다. 아마 앞 글자는 그의 존귀함을, 뒷 글자는 그의 직책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천황(天皇)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나치다. 황제국으로 중국을 다스리던 이들도 자칭 천자(天子) 정도로 그쳤다. 이집트로 치면 파라오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만 천황이라고 부른다.
자기나라의 왕을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자기들 사정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꼭 일본의 왕을 그들이 부르는 대로 부를 이유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그동안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우리말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왜황(倭皇) 또는 왜왕(倭王)이 조선시대까지의 공식적인 호칭이었고, 심지어 그 참칭(僭稱)을 싫어하여 가황(假皇)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제시대 친일파들은 개인적으로도 그를 천황이라고 불렀지만, 반대로 독립운동가들은 그저 왜왕, 싫으면 왜추(倭酋) 또는 도추(島酋)라고까지 불렀다.
그 나라의 원수는 그 나라에서 부르는 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지금 그의 호칭은 `덴노` 이다. `천황`이라는 우리말 발음은 일본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이 경우의 덴노는 영어의 킹이나 독어의 쾨니히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영국의 여왕을 퀸이라고 우리말에서 쓰지 않듯이 덴노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존경이나 경멸을 표할 목적이 아니라면, 명칭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명칭은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글자들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가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왕이면 그의 이름은 일본의 왕 `일왕(日王)`이다. 꼭 천황이라는 글자를 쓰고 싶으면 차라리 어색한대로`덴노`가 낫겠다.
/可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