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하는 불길 같은 거 말고
사귈까 어쩔까 그런 재재한 거 말고
보고 지고 그립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대천바다 물 밀리듯 솨아 솨아아아아
온몸의 물길이 못 자국 하나 없이 둑방을 넘어
진액 오른 황금빛 잎사귀들
마지막 물기 몰아 천지사방 물 밀어가듯
몸이 물처럼
마음도 그렇게
너의 영혼인 내 몸도 그렇게
- 김선우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2007)
김선우 시인의 셋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를 다시 읽는다. 지난 2005년 하늘로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어느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을 위무(慰撫)하고 있는 시 `열네 살 舞子`한 편만으로도 이 시집은 소중하다. 시집 내지에 그가 쓴 말처럼 `두 손`으로 읽어야 할 시집이다. 꽤 긴 장시(長詩)여서 독자 앞에 바로 내보일 수 없음이 무척 안타깝다. 시집을 사서 두 손으로 그 서러운 노래를 펼쳐보시길. 시집 속의 내용은 크게 우리 사회의 현실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과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킬링필드, 연밥 따는 아씨의 노래` `자운영 꽃밭에서 검은 염소와 놀다` `주홍 글씨` `내 손이 네 목 위에서`등의 시편들이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한 것이라면, `낙화, 첫 사랑` `월식 파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러니 애인아` 등의 시편들이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다. 다소 긴 제목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라는 시도 사랑을 노래한 시다. 제목에서 분명히 호명하고 있듯 대천바다의 큰물과 거꾸로 타는 은행나무의 상황을 빌려 시인은 가슴 벅찬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사랑은 시시하게 재고 따지고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대천바다 물 밀리듯 솨아 솨아아아아/온몸의 물길이 못 자국 하나 없이 둑방을 넘어” 오는, 은행나무의 “진액 오른 황금빛 잎사귀들/마지막 물기 몰아 천지사방 물 밀어가듯”하는 크나큰 사랑이다. 대천바다에 물 밀리듯 오는 그런 사랑 어디에 없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 내가 기꺼이 걸어갈 때 사랑은 물밀 듯 오는 것이지. 무서운 것이지.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