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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별처럼 ... 문정희

최진환 기자
등록일 2009-08-03 00:10 게재일 2009-08-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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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나무들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흙 속에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돌처럼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저녁별처럼



-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뿔·2007)



문정희의 시는 언제나 대담하고 거침없다. 그의 시가 가진 어법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의 그것이다. 그의 시는 여성인 시인이 세상을 향해 언제나 큰 소리로 내뱉고 싶었던 `내 몸의 말`로 만들어진다. “응”이라는 글자를 남녀의 성 행위로 비유한 `응`, “밥을 나와 함께/가장 많이 먹은 남자/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를 노래한 `남편`, 부처의 얼굴을 잃고 자연의 돌로 돌아가는 군위 인각사 앞마당 석불을 노래한`돌아가는 길`, “키 큰 남자를 보면/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라고 하는 `키 큰 남자를 보면` 등의 시편들이 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그의 작품들이다. 위 시 `저녁별처럼`은 `기도`에 관한 노래다. 문정희가 부르는 이 노래는 째째하게 교회나 성당, 절간 같은 어느 한 장소에 얽매여 있지 않다. 특정 종교의 공간에 한정되지 않으면서도 그 장소 모두에 발을 대고 있음이다. 진정한 기도는 그러한 것이리라. “땅에다/이마를 겸허히 묻고/숨을 죽인 바위돌처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회(懺悔)하고 본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노력을 다하는 `기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몸이 바로 새 세계를 여는 문(門)이 되는 것이리니. 아, 그러고 보니 시집 제목이 `나는 문이다`로 되어있다. 이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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