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가정법원에서는 황당한 고발사건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른을 넘긴 직장여성이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간섭을 하지 말 것과 100미터이내 접근을 금지해 달라는 소장을 낸 것이다.
가정폭력 등 문제가정에나 적용되는 법조항을 들어 부모를 고발한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는 과년한 딸이 돈벌이도 잘하고, 독립할 때도 되었건만 가라는 시집은 안가고 늘 부모신세만 지고 있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정 시집을 안가겠다면 밥값이라도 좀 내놓으라며 잔소리를 더러 했던 모양이고, 그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단다.
그녀로서는 자식이 독립을 선언하지 않은 한,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긴 모양이다.
물론 부모가 되어서 독립을 하지 못한 딸에게 밥값을 내 놓으라는 것은 우리의 정서로 볼 때는 야박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런 모습이 전적으로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치더라도, 한 지붕아래 살면서 100미터이내 접근금지를 요구한다는 것은 생각이 짧아도 한참이나 짧다.
집안이 얼마나 큰지는 모르지만 축구장보다 크지는 않을 터, 집이 부모의 소유니 부모가 대신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겠고, 당연히 자식인 딸이 100미터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결론인데, 결국은 법에 의해 자신이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가당착에 빠진 꼴이다.
웃기는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오늘날 적지만은 않은 신세대들의 의식이라고 하니, 부모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잊고, 부모는 단지 자기를 낳아주고 양육하는 의무만 진 사람으로 착각하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결과는 아닌지.
이런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 신조어를 가리켜 ‘파라싱글족’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기생충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등장한 매우 생소한 말이지만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유행하고 있었던 용어라고 한다.
이 말은 영어의 기생충인 패러사이트(Parasite)와 혼자라는 싱글(Single)의 합성어다.
독립할 나이가 됐으면서도 경제적인 실익을 노려 부모 집에 그냥 얹혀살면서 자기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즐기는 젊은 세대들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방에 컴퓨터, TV, 오디오, DVD플레이어 등을 갖추어 놓고 있으면서 가족과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실제론 독립된 생활을 한다.
수입이 불안정하거나 적어서도 아니다. 엄연히 고액의 수입이 있어 얼마든지 독립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붙어살면서 약간의 용돈으로 생색을 내고선 숙식을 제공받고 어머니에겐 빨래며 온갖 자질구레한 잔심부름까지도 떠넘기는 얌체를 뜻하기도 한다.
부모라는 그 하나만의 이유로 독립해 나가지 않으려는 자식을 억지로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니, 할 말을 다 못하고 마지못해 억지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애물단지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말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기생충족들이 최근엔 우리나라서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단다.
이제는 한 시름 놓고 여생을 즐겨도 되겠다고 여겼는데, 장성한 자식들의 때늦은 뒤치다꺼리로 편 허리 다시 구부리고 새삼 고생하는 노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학비 대느라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하고, 이제는 시집장가 보내 손자들 재롱도 보면서 노후를 편안히 즐길 수 있으려니 했는데, 장성한 자식들의 뒷바라지로 다시 또 새롭게 고생해야하는 노부모들의 처지가 딱해 보일 뿐이다.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다.”
가진 모든 것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마지막 남은 사랑도 주지 못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이제는 부모의 인생을 자식들이 챙겨주어도 좋을 때다.
많은 물질을 안겨주는 것만이 효도의 길은 아니다. 부모님의 인생도 존경해주며 편안히 여생을 쉬어가며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부모님의 지난날 고생을 알아주기는커녕 도리어 주판알 튕기면서, 자신들의 실리만 따지고 결혼을 미루며, 늙은 부모를 힘들게 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니, 부모는 마냥 봉으로 보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