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때와 다름없이 반에 앉아있는데 정월대보름 맞이행사를 하는 양동마을에 갈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 정월대보름행사에 직접 참여해보고 싶었던 나는 1교시가 마치자마자 잽싸게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운좋게도 봉사활동에 참가 할 수 있게 되었다.
2월9일 월요일. 드디어 고대하던 양동마을 봉사활동을 가게됐다.
교장선생님께선 양동마을에 직접 가서 보고 체험하는 것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돌아올 때 아주 뿌듯한 경험이라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서 양동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러갔다. 20분이 채 안 되어서 양동마을에 도착했다. 우리학교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이장님을 포함한 주민 분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그분들의 환영을 받으며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엔 일거리가 없어서 뭘 해야 될지 몰랐다.
그러다 점심시간 즈음 떡국을 방문자분들께 나눠드릴 땐 일이 넘쳐나서 몸이 10개라도 모자랐다. 무거운 상을 들고 이리저리 상을 놓아드리고 다시 부엌일 하는 곳으로 돌아와 상을 차리고 이것을 다시 배달가는 일을 수차례 반복했다. 또, 설거지거리와 떡소쿠리 옮기기, 빈상치우기 등등 일감도 많았다.
힘이 부쳐 힘들어 하고 있는데 마침 “학생들도 떡국먹어∼” 하며 아줌마들이 우리에게 떡국을 권했다. 열심히 일하고 먹은 떡국은 어느 때 보다도 맛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다시 힘이 불끈 불끈났다. 떡국 주문이 더 이상 들어 오지 않게 됐을 때 까지 열심히 상차리기와 나르기에 몰입했다.
일감이 적어져 쉬려고 할 때 쯤 다과를 가져오라는 주문이 폭주했다. 하루 종일 상을 들고 나르느라 피곤했지만 상을 차릴 때 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면 피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런 것이 봉사하는 묘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워진 상을 거의 다 정리하고 나서 친구와 함께 산책을 갔다. 1학년 1학기때 처음으로 봉사 왔던 곳이 양동마을이라 그 어떤 봉사활동보다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전에 봤던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찾으러 다녔으나 결국 찾지 못해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찰나. 마을 앞 들판에서는 친구들이 꼬마아이들과 연날리기에 한창이었다. 얼른 연을 날리러 내려갔더니 연이 없었다.
그때 마침 꼬마아이가 “언니 나 좀 도와줘” 하며 연을 건냈다. 나는 흔쾌히 연을 받고 열심히 뛰며 연을 날려줬다. 일상에서 탈출해서일까? 친구들의 얼굴은 연의 높이와 상관없이 모두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재밌게 놀고 있는데 영일고등학교 학생들은 다시 모여라는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 모두 벌써 학교로 돌아가는 거냐며 달집태우기를 무척 보고 싶었는데 일정에 없던 일이라 결국 못보고 학교로 돌아가는가 보다 하며 아쉬워했다. 비록 힘들긴 했지만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솔직히 처음 이 봉사활동을 신청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봉사활동을 가는게 과연 도움이 될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릴까? 하고 혼자서 수많은 생각을 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수업과도 바꿀 수 없는 좋은 추억과 기억들을 만들고 왔다 자부한다. 또한 봉사활동의 진정한 묘미를 이번기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친구와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다음에 또 다른 봉사활동 기회가 있다면 망설임 가자고 얘기했다. 나에게 이러한 봉사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신 영일고등학교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