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칼럼니스트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이 어슬렁거리다 깜짝 놀란 듯 닭 장수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깃털이 멋진 닭을 가리키며 막무가내로 봉(鳳)이라 우긴다.
그 바람에 닭 장수도 김선달이 미련해 보였든지 사기성이 발동해 닭을 봉이라며 슬쩍 김선달에게 판다. 김선달은 이 닭을 품에 안고 고을 사또를 찾아가 봉을 선물하러 왔다며 법석을 떨었다. 사또가 봉이라는 것을 받아보니 어디를 봐도 닭이 분명했다.
이 일의 자초지종을 들은 사또는 닭 장수를 불러 벌을 내리고 김선달에게 수십 냥의 봉 값을 물어주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게 어수선한 장터 같은 분위기에서 꾀 많은 ‘봉이(鳳伊) 김선달’을 만나면 닭도 잠시나마 봉황으로 거래가 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전설 속 상상의 새 봉황은 오동나무에 살고 예천(醴川, 태평할 때 단물이 솟는다는 샘)의 물을 마시며 대나무 열매를 먹는다고 전해진다.
그 전설로 볼 때 봉황은 태평성대를 기다리며 항상 속을 비운 채 사는 새로 상상된다. 이 상서로운 새가 조선시대 경복궁 정전의 천장에 날아올라 오늘날 우리 대통령의 상징이 돼 무궁화 꽃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한때 봉황을 후광으로 두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황의 화려한 자태에 넋을 잃어 정작 봉황의 ‘곧음과 비움’에 대한 의미를 망각했는지 아니면 청렴해 보이려는 욕심이 지나쳐서 일까?
이제 가족과 친인척이 관련된 청탁과 금품수수비리 의혹이 세상에 불거지자 혼자만 깨끗하다며 선을 긋는 모양새가 너무도 궁색해 보인다. 예로부터 백성의 고충은 임금이 부덕한 탓이요 가족의 혼란은 가장이 부덕한 탓이 아니었던가?
먼저 내 탓임을 알아야 사랑도 알고 고마움도 아는 법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노 전 대통령은 “민생문제는 문민정부시절 물려받은 것, 민생문제 만든 책임은 없다.”고 했고 부동산가격이 불안해지자 “부동산을 한 번에 잡지 못한 이유는 반대와 흔들기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당장의 위기가 아니어서 비상도 걸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하여튼 노 전 대통령은 문제가 불거지면 내 탓보다 남 탓부터 찾으려 애쓰는 것 같다. 그의 이런 시각은 조금도 변함없이 현재 불거진 비리의혹에 대해서도 ‘그럴 리가 없다’며 제 식구 감싸더니 이제 자신을 향해 뇌물에 대한 의혹이 밀려오자 ‘나는 몰랐다’란 식으로 외면하고 있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줄 모르고 철석같이 믿었던 3인방(박연차씨, 강금원씨, 정상문씨)이 영어의 몸이 되자 봉하마을 대저택을 감옥이라 했다.
그나마 세상여론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던 자신의 홈페이지도 문을 닫겠다며 자신을 “이제 버려달라”고 했다. 이는 ‘자포자기’라기보다 자신의 이상과 가치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세상 탓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여기에 참여정부시절 홍보수석을 지냈다는 모 교수는 이번 수사는 ‘정치보복’이며 대통령이 청렴해 재산이 없어 그것이 안타까워 참모가 청와대 공금을 빼돌린 ‘생계형 범죄’를 조직적 범죄와 비교하지 말라는 투의 발언을 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창피스러워 고개를 못 들겠다. 노 전 대통령 입에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나올까 두렵다. 역경을 펼치면 뇌화풍(雷火豊)이란 괘가 나온다. 이 괘는 ‘충족 속의 슬픔’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해가 중천에 솟아 있으면 곧 기울어지고 달이 차면 이지러진다는 것이다.
이 괘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 현재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려면 세상에 당당하게 나와 ‘내 탓이요’라며 공명정대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게 이 나라 전직 대통령다운 자세가 아닐까?
치국(治國)을 하려면 먼저 제가(齊家)부터 하라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불거진 금품수수문제에 그는 “몰랐던 일을 몰랐다고 말하기로 했다”하고 부인도 돈의 용처를 “검찰이 확인해라”고 한다.
‘내 마음 찾아봐라’는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민심은 ‘봉이 김선달’에게 속은 닭장수가 된 기분일 게다.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한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