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내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자 예보와는 상관없이 멎었습니다.
각지에서 모여 든 100여 명의 시인들 장생포를 메우던 그 날,
그래요, 저도 물빛 고래를 만나러 갔어요.
울산은 4월 25일을 ‘고래의 날’로 제정하고
첫 행사로 ‘고래문학제’를 열었습니다.
시인들이 저마다 한 편씩 고래를 시로 불러들여
한 권 톡톡한 책으로 발간하고
김남조 시인과 천양희 시인을 모셔 귀한 말씀 들으며
함께 관경선을 타고 먼 바다로의 고래 마중 꿈꾸는 자리였습니다.
‘바위섬’이나 ‘직녀에게’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가수 김원중씨는
의미 있는 문학행사마다 몫을 나누어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는데요.
거리의 소박한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는 그에게로
어깨를 걸거나 박수를 치며 시인들은 둘러앉았지요.
공업도시로 살아왔던 울산이 이제는 고래를 통해
친환경적 테마로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한다고,
세상의 관심과 지원을 바라노라고 펼친 자리였습니다만,
거창한 축사를 하던 내빈들 그 어떤 말씀 보다
뒤에서 조용히 행사를 진행하던 정일근 시인의 모습과
지팡이를 짚고 오른 여류 노시인 김남조 시인의 말씀에
우리는 더 뜨겁게 공감하였답니다.
시인은 아무도 관심 없었던 텃밭을 발견하고는
새벽부터 나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는 자 이니라 하셨지요.
오래 전 이 땅 울산에서 한 마리 고래를 발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되어 여기까지 온 건 다름 아닌 한 사람 시인이었다 하셨지요.
하지만 시인은 씨를 뿌리고 간절히 바라보는 자요,
그것을 가꾸고 거두고 내다 팔아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관료들이어야 한다는 말씀.
그 공로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생각은 훨훨 풀어놓고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는 그 말씀.
그래요.
하늘이 파도를 풀어 우리가 탄 관경선은 한 치도 나가지 못하였어요.
당연히 물빛 고래 한 마리 만나지 못하였지요.
그러나 울렁울렁 함께 흔들리는 시간 지나며
누구 하나 아쉽지 않았던 자리입니다.
저 바다는 이미 고래의 삶터라 그들의 호흡과 움직임이 배어있어서
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들을 만난 것이니까요.
작은 꽃 하나와 사랑에 빠진 시인과
30촉 백열등 같은 세상의 밝기를 키우는 시인과
아, 이 세상 어느 곳이든 태어나며 받아 온 몫을
글로 뿌리다 돌아 갈 수많은 시인들.
봄 햇살 눈부신 장생포에서
세상의 모든 고래들 함께 기다리기로 약속하며 손 흔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