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 위치한 광복회대구경북연합지부 1층. 다소 엄숙한 분위기 속에 한쪽 벽면에는 여러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날 이곳에서 지역에 몇분 남지 않은 독립유공자 가운데 한 분인 장병하(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1943년 일제의 식민 정책과 만행이 극에 달할 당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이란 비밀단체에 속해 조선의 해방을 지향했다.
그를 비롯한 60여명의 동지들은 일본 육군 기념일에 무장투쟁으로 시민의 동참을 유도해 항일 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몇 차례 준비했던 항일 운동 계획은 사전에 탄로나 연거푸 실패했으며, 결국 1945년 3월 이들은 일본군에 붙들려 안동 형무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지내야 했다.
그 당시 아픔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동지 중 손성한 지사는 옥중 고문으로 숨졌고, 몇몇은 정신이상 등의 후유증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더구나 함께 생활해오던 동지를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이 너무나 참혹했다고.
이후 8월15일 해방과 함께 바로 석방된 그는 46여년간을 교직에 몸담아 오면서 아이들에게 생생한 항일운동 체험담을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데 힘썼다.
그는 “국권을 빼앗기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국력을 길러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과 창의성 교육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국력을 키우기 위해선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자세가 중요하다고.
현재 정부가 독립유공자들로 지정한 사람의 수는 1만여명. 하지만 1919년 3월부터 세 달간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200만여명. 그 중 7천여명이 숨졌다.
그는 “국가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면서 “운동가들의 후손들은 가난이 대물림 돼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들을 파악하고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예우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독립유공자들에겐 나라의 물질적 보상보다 시민의 정신적 예우가 큰 힘이 된다”면서 “버스를 승차할 경우 운전기사들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더 뜻 깊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주 얄팍한 지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앞으로 정부는 젊은 세대들이 은연중에 이들의 정신을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테마여행 등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천미희기자 chmh1226@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