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를 역설한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 맹자(BC 372∼289)님 말씀이다.
실생활에서 자주 인용하면서도 정작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는 이가 많다. 맹자님 하면 성선설, 맹모삼천 정도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고 보면, 이 말이 맹자님이 하신 말씀이라는 걸 어찌 알 수 있으랴.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 나에게서 떠나는 자는 떠나는 대로 두고, 가르침을 받고자 오는 자는 그 사람의 과거에는 구애됨이 없이 맞이한다.
맹자님에게도 실연의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실연 당한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술 한잔 권하면서 이 말을 많이 사용한다.
또 “버스 떠났다고 다음 버스 안 오나” 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많이 사귀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 수준의 바람둥이가 되라고 권하는 게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젊었을 때 실연을 해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해 남자는 좋은 여성을, 여성은 좋은 남성을 선택하는 법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기 어렵다. 도무지 인간적인 매력이 없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사랑의 행복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것이 미움의 아픔 아니겠는가?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원각경’에도 나오듯이 모든 인생의 고통은 사랑과 미움에서 비롯된다.
미움은 사랑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다. 나는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마라”라는 말을, 가는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고 오는 사람은 편견 없이 반갑게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싶다.
집착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잡는 것은 혼자만의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에 집착하고 과도한 미련을 가지는 것은 정신 불건강이고 노이로제의 출발점이다.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이미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애인을 맞이한 남자가 언제나 떠나간 사랑에 대해서 집착을 가지고 ‘아 옛날 애인은 예뻤는데 지금 내 애인은 왜 이리 못 생겼을까’하고 아쉬워 해봐야 오히려 현실 속의 진주를 놓치는 우를 법하거나 화병만 생긴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우리 새 애인은 못 생겼으나 마음이 아름답고 그 사랑이 진실하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생각하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언뜻 보면 비논리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그녀)가 떠나고 싶어 할 때 자신의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보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을 한 분들이 얼마나 심오한 뜻을 가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인관계 뿐 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집착과 미련 때문에 현실을 그르치곤 한다. 자신을 불행한 과거에 묶어 두고 고민하다 보면, 다음에 오는 더 좋은 기회도 못 살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나 자살하러 간다”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려는 사람을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며 못 본 척하면 절대 안된다. 이때는 무조건 뛰어가서 잡아야 한다.
민첩하게 그 사람의 발목을 잡았느냐, 주춤거리다 신발을 잡았느냐에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다.
<계속>